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半月 / 황진이

얼레빗 저 반달! 이젠 내게 필요 없어요

'얼레빗 저 반달! 이젠 내게 필요 없어요'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 황진이(黃眞伊'연대 미상)는 조선 중기의 명기(名妓)다. 한시와 시조에 뛰어났다고는 하나 대부분 전해지지 못하고, 한시 4수와 시조 6수 등이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돼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곤륜(崑崙)의 귀한 옥을 누가 캐어/ 직녀(織女)의 얼레빗을 만들었을까/ 오마던 임 견우(牽牛) 오시지 않고/ 시름에 못 이겨 허공에 던진 거라오'라고 번역된다.

황진이는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3절'(松都三絶)이라 한다. 또한 부안의 매창 이계량, 성천의 운초 김부용과 더불어 조선 3대 시기(詩妓)로도 알려진다. 재색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명기인 그녀는 어디를 가든 선비들과 어깨를 겨누고 대화하며 뛰어난 한시나 시조로 음영(吟詠)했다. 가곡에도 뛰어나 '가야금의 선녀(仙女)'라고도 했다.

일설에는 시인이 15세 때 이웃의 한 서생이 그를 사모하다 병으로 죽었는데, 영구(靈柩)가 황진이의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말이 슬피 울며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속적삼으로 관을 덮어주자 말이 움직여 나아갔고, 이 일이 있은 후 기생이 되었다는 말이 전한다.

서경덕이 처사(處士)로 학문이 높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시험하다가 그의 높은 인격에 탄복하여 평생 그를 사모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서경덕을 스승으로 모셨지만 내심 깊은 연정을 느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시에서는 곤륜산 귀한 옥을 빗대어 견우와 직녀의 사랑 선물로 음영한 시적 감흥을 만날 수 있다. 결구(結句)에서 근심에 못 이겨 얼레빗을 허공에 던진다는 가구(佳句'잘 지은 글귀)의 비유법은 적절하다.

【한자와 어구】

誰: 누구/ 斷: 끊다, 여기선 캐다/ 崑崙玉: 곤륜산의 옥, 서왕모(西王母)가 살았으며 불사의 물이 흐른다고 믿었음/ 裁成: 끊어서 만들다/ 織女梳: 직녀가 사용하는 얼레빗/ 牽牛: 견우성/ 一去後: 한번 떠나고 후로는/ 愁: 시름에 겨워서/ 擲: 던지다/ 碧空虛: 허공, 푸른 하늘

기명(妓名)이 명월(明月)인 황진이는 개성 출신이다. 중종 때 진사의 서녀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서(書)'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했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水)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을 표현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허리를 베어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 '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 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 등이 있다.

장희구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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