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결혼자격 시험

이규석 대구카네기연구소 원장 293lee@hanmail.net
이규석 대구카네기연구소 원장 293lee@hanmail.net

결혼은 어렵고 이혼은 쉬운 묘한 세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축복이요, 몸과 마음, 영혼을 만들고 자라게 하는 가정을 탄생시키는 결혼은 누구에게나 인생 최대의 축제다.

연락이 뜸하던 사람이 찾아와 주례를 요청해오면 많이 당혹스럽다. 주례는 어렵고 주례의 거절은 더 어렵다. 어느 유명인사에게서 배운 대로 "내가 주례한 커플들은 이혼을 잘 하더라"라고 했더니 겁이 나는지 절반은 슬며시 돌아간다.

아무리 이혼이 흔해졌다 해도 가정이 깨졌다는 소리를 들으면 많이 괴롭다. 그래서 나는 결혼자격시험을 치러 합격하면 주례를 맡겠다고 제안한다. 그래도 좋다는 커플들과는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커플에게 '지금 장작 불 같은 뜨거운 사랑이 식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따져 묻는다. 자신들은 아주 특별한 사랑이라서 늘 뜨거울 것이니 믿어 달라고 한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단단히 못을 박고 과제를 준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고 신부는 남자에 관해, 신랑은 여자에 대해 보고서를 쓰게 한다. 남자와 여자는 몸의 구조가 다르듯이 마음의 구조도 다르다. 남자는 이성이 발달해 능력에 목숨 걸고, 여자는 감성이 충일해서 사랑 때문에 산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차이도 모르고 많은 부부들이 다르기 때문에 싸우고 다르기 때문에 헤어진다. 미리 알아 행복을 챙기고 싶은 커플들은 어려운 숙제도 잘한다.

사랑만 있다고 행복한 가정이 되고, 자녀가 생겼다고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가정에서 문제아가 난다고 했는데 겉보기에 멀쩡한 가정에서 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처음부터 따듯한 관심과 배려가 자연스레 오가야 하는데, 부부 사이에도 이기주의가 밀려들고 있어 안타깝다.

어떤 가정으로 가꾸고 싶은지도 구체적으로 그려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든 그들의 꿈, 그리고 친필로 작성한 혼인서약을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직접 낭독하게 한다. 서로에게 강한 책임이 생겨 좋단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까다롭기는 하다. 어떤 경우라도 가정만은 깨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통과의례적인 결혼식이 아닌 부모보다는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 이미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익히고 밝혔는데 무슨 주례사가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단지 그들이 절대 헤어지지 못하도록 꽁꽁 묶기만 할 뿐이다. 행복이 강물처럼 흐르는 순도 100%짜리 가정을 만드는 일이 쉽기야 하겠나 싶다.

이규석 대구카네기연구소 원장 293lee@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