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70, 80년대 우리 만화계를 주름잡았던 '독고탁'을 무척 좋아했다. 역경을 꿋꿋하게 극복해 나가는 만화 주인공을 닮고 싶었다. 애써 명랑쾌활한 성격을 가지려고도 남몰래 노력했다. 집안 형편은 자가(自家)에서 전세로, 다시 사글세로 옮겨야 할 정도로 점점 더 어려워졌지만….
세월이 그새 많이 흘렀다. 말썽쟁이 까까머리는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이다. 스스로를 부자(富者)라고 생각할 정도도 됐다. 그러나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즐겁다"는 진리를 일찍 깨달은 덕분이다. 틈나는 대로 소외된 이웃을 찾아 마술'기타 공연을 펼칠 때마다 받는 박수 소리는 그에게 엔도르핀(endorphin)이다. '해피 바이러스'를 자처하는 서영학(50) 내일투어 대구지사장의 삶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다
서 지사장은 타고난 '여행쟁이'다. 캠핑이라는 영어 단어보다 야영이란 우리말이 더 익숙했던 1970년대, 중학생 시절부터 솥과 텐트를 걸머지고 산을 찾았다. 경력으로만 따지면 30년 베테랑 캠퍼(camper)다. 지금도 그의 차량에는 늘 캠핑용품이 잔뜩 실려 있다.
"주무대는 앞산이었죠. 코흘리개 시절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다니던 곳이니까요. 당시만 해도 아무 곳에서나 취사가 가능할 때라 친구들이랑 우르르 몰려가서 국수를 삶아 먹곤 했습니다. 라면은 우리 처지에 너무 비싸서 달랑 하나만 넣고 겨우 맛만 볼 정도였지만 정말 인기가 끝내줬죠. 하하하. 고산골은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아침마다 찾는 제 마음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그런 그가 대학 전공으로 관광학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1982년 대구경북지역 4년제 대학 가운데 처음 개설된 대구대 관광과에 입학했다. 60여 명의 동기 가운데 아직까지 여행업계 현장을 지키는 것도 자신이 유일하단다.
"공부를 꽤 잘해서 S대 법대를 갈 정도였다면 안 믿으시겠죠? 물론 농담입니다만 그 정도로 관광이란 분야에 관심이 많았죠. 물론, 부모님도 제 선택에 반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여행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넌 무엇을 하든 잘할 수 있어'라고 항상 격려해주시기도 했고요.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파이오니어'(pioneer'개척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어 단어입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가세(家勢)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관광선진국에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었다. 해외여행 자유화(1989년) 이전이라 외국 대학의 입학 허가가 있어야 출국이 가능했던 만큼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겨우 두 달 정도 버틸 돈만 쥐고 유학길에 오른 가난한 유학생의 가방에는 옷가지와 책, 코펠이 전부였다.
"도쿄에서 식당 서빙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는데 한 번은 한 달 만에 잘렸습니다. 손님한테 서비스를 너무 많이 준다는 이유였지요. 제가 항의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 나빠질까 봐 더 이상 문제 삼지는 않겠다.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마라'라고 했더니 일본인 사장이 정말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위로금까지 주더군요. 그때 저는 자신의 잘못은 용기 있게 인정해야 한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고학(苦學)이 너무 힘들어 공부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아이디어맨의 긍정적 사고
그의 목소리는 항상 유쾌하다. 자신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도움을 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술을 배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링과 카드를 이용한 마술 솜씨를 뽐냈다.
"20년 전에 호주 시드니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크루즈투어를 경험했는데 여행객들이 같이 참여하는 마술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귀국한 뒤 마술학원에 등록해서 열심히 배웠고,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공연을 합니다. 특히 지루하기 십상인 특강에 앞서 마술을 보여주면 집중도가 훨씬 높아지죠."
아이디어는 그의 또 다른 '무기'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자비를 들여 한국과 대구를 알리는 스티커와 한복'김치'태극기 등을 그려넣은 '마술 카드' 세트를 제작, 해외여행을 떠나는 고객과 지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나눠줘 호평을 받았다. 요즘 그가 새로 재미를 들인 취미는 아파트단지 엘리베이터에 좋은 글을 붙이는 일이다. 마음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되는 글귀를 잠깐이라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술에 흥미를 느끼게 해줬던 시드니는 제게 즐거웠던 곳,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대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구 사람들이 좀 무뚝뚝하잖아요? 재미있고 간단한 마술 하나씩만 시민들이 익힌다면 우리 고장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즐거움과 좋은 추억을 남겨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도 간단하지만 대구를 기억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의 대구 사랑도 유별나다. 개인 이메일 주소는 경상도 사투리인 'makadada'(마카다다)를 쓴다. 모두 함께,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구 관광 활성화를 위해 '대구 출발 대구 도착'을 기치로 내건 '대출대도'(http://cafe.naver.com/gonowcamp)라는 캠핑'여행 동호회도 만들었다. 지난해 7월 결성된 이 동호회에는 캠핑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현재 3천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캠핑이 레저문화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각종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지만 정작 대구시민들이 필요한 부분은 부족한 것 같아 가까운 후배들과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초보자 캠핑 교실, 오프라인 카페도 운영할 계획인데 건전한 캠핑문화 정착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턱대고 장비만 거창하게 꾸려와서 흥청망청 놀다가 쓰레기만 남기고 떠나는 캠핑족들이 적지않거든요. 자연을 즐긴다는 캠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고수의 여행 노하우
해외여행이 대중화되면서 항공권'호텔만 예약해서 떠나는 개별 자유여행(FIT'Free Individual Tour)이 최근 부쩍 늘었다. 패키지여행의 꽉 짜인 일정 대신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만 골라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의 강제 쇼핑이나 옵션 투어로부터 자유롭다는 것도 장점이다.
1991년 배낭여행 전문업체의 대구지사장으로 여행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서 지사장도 과감하게 '나만의 여행'을 한번 떠나보라고 권했다. 다만 개별 자유여행은 여행계획 수립에서부터 귀국까지 여행자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만큼 노하우가 풍부한 전문 여행사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즐기고 쉬러 가는 것이 여행인데 복잡하고 어려운 준비과정 때문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기분을 망칠 필요가 있느냐는 설명이었다.
"자유여행은 더 이상 젊은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소개되면서 중장년층, 특히 가족 단위의 자유여행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함께 노력해서 이뤄냈다는 성취감 덕분에 만족도도 아주 높지요. 또 자유여행은 비싸다는 인식이 있는데 전문여행사를 통해 항공'숙소'교통 등을 예약하면 개인이 직접 하는 것보다 저렴합니다. 도매로 구입하는 것과 소매로 구입하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겁니다."
개별 해외 자유여행과 관련, 그는 굳이 직항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훨씬 저렴한 요금으로 짧은 동선(動線)의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대구국제공항의 취항 노선이 열악하지만 발상의 전환만 하면 '꿩 먹고 알 먹고'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몇 시간씩 걸려 인천이나 김해까지 가면 본격적인 여행을 하기도 전에 지치기 마련입니다. 시간 여유가 많은 여행자라면 이럴 때 대구에서 중국 베이징'상하이를 잇는 항공편을 이용하면 유용합니다. 경유 도시에서 중간체류하면서 여행이 가능해 미국이나 유럽 왕복 요금으로 중국까지 덤으로 관광할 수 있는 것이죠. 중국 항공사들은 자국을 경유해서 제3국으로 여행하는 손님들의 당일 환승이 불가능할 경우 호텔 1박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행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도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알찬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어디를 가봤느냐보다 무엇을 해봤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간만에 목돈을 들여서 해외여행을 갔는데 껍데기만 보고 온다면 본전을 뽑을 수 없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익혀서 좋은 점이 있다면 돌아와서 자기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겠지요. 과소비 여행은 당연히 자제해야겠고요. 그런 점에서 개별 자유여행이 장점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출발 전에 여행의 목적을 분명히 정해야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남부권 신공항이 들어서면 지역민의 여행 문화도 훨씬 성숙해지리라 봅니다."
◆서영학 지사장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봉초교'대구중'대구고를 졸업했다. 한때 자신의 여행사를 창업하기도 했지만 자체 브랜드의 한계를 느껴 지금은 개별 자유여행 송출 1위인 '내일투어'의 대구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파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행업계에 직격탄이 됐는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큰 이유였다.
10년 넘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그는 자전거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인생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가다 보면 유턴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잠시 쉬었다 가야 할 때도 있는데 자동차는 그럴 때 재빨리 변화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또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이웃과 정도 나눌 수 있지요. 제가 오지랖이 넓다는 소리 듣는 것도 자전거 덕분입니다."
글'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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