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학 녹아든 온천, 의료관광 물꼬 트다

힐링시대 맞아 '효능 공인화' 까지

아침저녁 기온이 제법 서늘해지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게 느껴진다. 뜨끈뜨끈한 온천이 생각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전국에는 400곳이 넘는 온천이 있다. 하지만 수온과 성분, 생성 과정 등 특성도 제각각이다. 알고 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보양온천'과 같은 곳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온천, 알고 가자

온천의 사전적 의미는 '지열에 의해 지하수가 그 지역의 평균 기온 이상으로 데워져 솟아 나오는 샘'이다. 현행 온천법은 '지하로부터 용출되는 25℃ 이상의 온수로, 그 성분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0년 8월 공포된 온천법 시행령은 구체적으로 '질산성 질소는 10㎎/L 이하, 테트라클로로에틸렌은 0.01㎎/L 이하, 트리클로로에틸렌은 0.03㎎/L 이하이며 음용 또는 목욕용으로 사용돼도 인체에 해롭지 않아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샘'은 국내에 거의 없다. 안전행정부가 지난해 연말 펴낸 '온천발전 종합계획'과 '전국 온천 현황'에 따르면 국내 온천 452곳은 대부분 심부 지하수 형식이다. 자연용출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울진 덕구'포항 신광'양양 오색온천뿐이다.

특히 시추기술의 발달로 최근에 개발한 온천공(溫泉孔'온천물이 솟아 나오는 구멍)일수록 심도가 깊어지는 추세다. 전국 온천공 1천222개 가운데 500~700m 미만이 365개(29.87%), 700m~1㎞ 미만이 423개(34.62%), 1㎞ 이상이 78개(6.38%)로 전체의 70% 이상이 지하 500m 이하에서 온천수를 뽑아 올리고 있다. 대구 13곳, 경북 95곳의 온천 대부분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온천이 크게 늘어난 것은 1981년 만들어진 온천법의 영향이다. 섭씨 25도를 온천의 최저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지표수는 지하로 갈수록 100m당 평균 2.5도 정도 올라가는데 깊이 땅을 파면 수온이 25도를 넘기 마련이다. 실제로 전국 온천공 가운데 수온이 25~30도인 곳이 59.17%(723곳)나 되는 데 비해 45도 이상인 곳은 190곳(15.55%)에 불과하다.

대구에는 40도가 넘는 곳이 없고, 화원식염(달성군 화원읍'36.8도)'엘리바덴(달서구 상인동'34.2도) 등 2곳이 30도가 넘었다. 경북에선 울진 백암(46.4도)'덕구(42.4도)와 포항 이동스포렉스(47.5도)'용흥(46.7도)'양학(46도)'대도(44.1도)'패밀리(42.8도)'건강랜드(41.0도)'성곡(40.8도) 등 9곳이 40도 이상이다.

온천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전체 온천의 70% 가까이가 수온 30도 이하인 저온형이라 자연 온천수를 그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저온형과 일부 중온형 온천은 지하수를 인공적으로 한 번 더 데워 운영한다"고 전했다.

온천은 여러 가지 광물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반 틈 사이로 지하수가 순환하면서 지하 열원에 의해 뜨거워지는 동안 물과 암석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나 다양한 광물질과 가스 성분이 녹아 들어간다.

그러나 수온뿐 아니라 광물 성분도 온천마다 천차만별이다. 국내에는 약칼리성 중탄산(HCO3)-나트륨(Na)형 온천이 가장 많다. 당뇨'기관지염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유황 성분 온천도 일부 있지만 온천수 1ℓ당 유황 함량에 따라 유황온천(1㎎ 이상)과 함유황온천(0.01∼1㎎)으로 나뉜다. 이름만 유황온천인 온천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 밖에 탄산가스가 녹아 있는 탄산천은 피부 모공을 확장해 노폐물이 쉽게 배출되게 도와 피부질환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보양온천, 들어보셨나요?

수백 개에 이르는 온천 가운데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이라면 정부가 2009년부터 지정하고 있는 '보양온천'을 선택기준으로 삼을 만하다. 보양온천이란 수온(35도 이상)'성분(탄산천'유황천)과 내부시설(응급조치실'운동욕장)'주변 환경(공기청정도'소음도) 등을 기준으로 건강증진과 심신요양에 적합한 온천을 말한다.

2009년 속초 설악워터피아'아산 파라다이스 도고'울진 덕구'예산 덕산온천을 시작으로 2010년 동해 그랜드관광호텔'충주 중원'화순 비오매드, 2011년 제주 삼매봉 스파밸리 등 모두 8곳이 안전행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보양온천으로 지정되면 지방정부로부터 복지'의료'도로'전기시설 설치, 사업자금 우선 융자'각종 조세 경감, 국내외 홍보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안전행정부 지역공동체과 온천담당 박래범 사무관은 "국내의 웰빙 수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치료'휴양기능을 갖춘 보양온천을 선정하고 있다"며 "도시 노인층 및 아토피성 질환이 있는 어린이들의 보양온천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온천은 치료 수단으로 이용됐다. 우리나라에는 상처 입은 백로나 노루가 온천에서 치유했다는 전설이 많이 남아 있고, 임금들이 온천에서 피부병'안질 등의 신병을 치료한 역사 자료도 전해진다.

유럽의 온천 역시 오래전부터 보양온천의 성격을 띠었다. 목욕이란 뜻의 영어단어 'Bath'의 기원이 된 영국 도시 '바스'는 영국에서 유일하게 자연 온천수가 발생하는 광천 휴양지로, 로마시대부터 전쟁 후 부상병들에게 쉬고 재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발된 곳이다.

또 독일이나 일본 등지에선 보양에 적합한 온천지를 보양온천지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온천욕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과 의사의 처방에 따라 휴식 또는 치료가 가능한 공간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프랑스'독일은 온천전문의'건강보험제도를 운영, 치료비와 교통비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에는 온천 전문의가 500명이 넘는다. 식이요법, 수(水)치료법 등 다양한 효능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보양온천 전문의 제도, 건강보험제도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각 온천별 온천수의 의료적 효능에 대한 임상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서두르고 있다.

◆의료관광개발과 연계 노력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와 주 5일 근무제 확산 등으로 관광'웰빙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온천산업은 침체기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 온천의 시설 노후화, 찜질방'워터파크 등 대체산업의 발전 및 해외관광 보편화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통 온천은 온천법 제정 이전에 개발된 온천으로 부곡'온양'동래'유성'수안보'백암'덕구'마금산 등 전국 14곳이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전국 온천 이용객은 2004년 4천900만 명에서 2007년 5천300만 명, 2011년 5천700만 명으로 성장세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특히 전통 온천만 보면 1999년부터 2007년 사이 유성온천은 636만 명에서 356만 명, 부곡온천은 408만 명에서 322만 명, 온양온천은 430만 명에서 171만 명으로 이용객이 급감했다. 온천 이용객 감소로 휴'폐업 업소도 증가, 최근 10년간 2006년을 정점으로 이용 업소가 100곳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온천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온천수를 활용한 의료관광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의 일회성 이용에서 벗어나 장기적 체류와 웰빙 개념이 혼합된 온천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울진군은 최근 가톨릭대'건국대'경희대'연세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사)대한온천학회에 의뢰, 지역 온천수의 의료적 효능에 대한 동물(쥐) 임상실험 연구를 시행했다. 연구 결과, 울진의 온천수는 아토피 피부염의 염증을 치료하고 혈압 및 통증을 줄여 임상적으로 상태가 호전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온천수 음용시에도 혈당 강하와 이완기 혈압 감소, 위점막 손상 예방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울진군청 관계자는 "지역 온천의 의료적 효능이 입증된 만큼 울진 온천의 명품화를 위해 우수성을 적극 홍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수성구'달성군 및 청도군과 공동으로 '한방 휴(休) 사업'을 올 하반기부터 추진 중이다. 한방의료(Medical)-휴양(Recreation)-문화체험(Culture experience) 자원을 묶어 치유'휴양의 공간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대구시 오준혁 의료산업과장은 "외부 접근성이 뛰어난 대구 수성구의 대구한의대 한방병원을 비롯한 200여 개의 한방 병'의원과 들안길먹거리타운을 인근 달성'청도군의 비슬산'스파밸리온천'소싸움경기장 등 관광 인프라와 연계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16일부터 20일까지 '2013 대한민국 온천대축제'를 여는 충남 아산시도 이번 축제를 통해 한방 온천 의료 시스템 등의 성과를 알린다는 계획이다. 온천수를 이용한 의료'미용제품을 선보이는 각종 전시회에는 지역 대학 및 대학병원'화장품업체가 두루 참여한다. 아산시 측은 "지난해부터 대전대 천안한방병원과 함께 온천수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진행해 왔다"며 "온천 입욕이 통증 완화는 물론 아토피, 비만, 고혈압 개선 등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온천을 이용한 의료사업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온천산업 활성화를 위한 '온천 대축제'는 2007년 울진을 시작으로 속초'부산'충주'창녕 등 유명 온천 도시에서 해마다 순회 개최하고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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