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 칡소가 먹거리의 대세다. 울릉도의 토종 먹거리인 섬말나리, 충남 논산 연산오계 등 국내 7개 품목과 함께 최근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올랐기 때문이다. 맛의 방주는 이탈리아에 본부를 두고 150여 개국 10만여 회원이 활동하는 비영리기구 '슬로푸드 국제본부' 프로젝트 중 하나로 음식 문화유산의 소멸을 막고 세계 음식에 관심을 두자는 취지로 1996년 시작됐다. 우리 음식이 맛의 방주 목록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울릉 칡소는 섬말나리와 함께 이름 앞에 '울릉'이란 수식어가 붙지만 태생은 전혀 다르다.
섬말나리는 오래전부터 울릉도에서 자생한 백합과 식물. 조선 고종 때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지면서 울릉도 나리분지에 정착한 개척민들은 섬말나리 뿌리를 구황식물로 활용했다. 나리분지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
칡소 또한 울릉도가 원조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칡소는 울릉도에 1, 2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은 '울릉 칡소'가 칡소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가 됐다. 가격도 일반 한우보다 50% 정도 높아 울릉도 축산농가의 효자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울릉군 농업기술센터 측의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심엔 이경태 축산계장이 있었다.
◆칡소, 종 복원으로 뜨다
8일 울릉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이 계장은 "결론은 '종자산업'이더라"며'칡소특화단지사업'을 준비하던 2005년을 떠올렸다.
"울릉도 축산농가는 대부분 소규모다. 게다가 섬이라는 입지적 여건상 물가가 높아 여러모로 경쟁력이 약했다. 새로운 뭔가가 필요했고, 그렇다면 육지에 없는 것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올린 게 칡소였다."
사실 한우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누렁소(황우)를 떠올린다. 하지만 칡소도 검정소(흑우)와 함께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한 고유의 한우 품종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 등장하는 '얼룩박이 황소'가 칡소다.
칡소가 쉽게 보기 힘든 품종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소는 검정소, 한국 소는 누렁소'라는 일본의 축산 정책 때문이었다. 그 결과 누렁소를 제외한 나머지 품종은 대부분 도축됐다.
해방 이후에도 칡소는 누렁소 중심의 한우개량사업에 떠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칡소의 호랑이 무늬가 잡종이 아니냐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면서 팔기도 힘든 잡소로 취급됐다. 당연히 가격도 낮았다. 이후 1990년대 후반 재래종 복원 바람을 타고 칡소 사육 농가가 잠시 느는 듯했지만 여전히 낮은 가격에 상당수 농가가 사육을 포기했다. 2004년을 전후해선 전국을 통틀어 400마리가 채 안 됐다.
"이즈음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우리 재래종을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에 등재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봤다. 곧 칡소에 대한 평가도 바뀌겠구나 싶더라. 바다 한가운데 청정지역에서 자란 한우라면 '친환경' '웰빙'을 추구하는 오늘날 먹을거리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울릉군 농업기술센터는 2006년 첫 사업을 시작했다. 우선 2000년대 초반부터 칡소 종 복원 연구를 이어온 한경대 유전공학연구소와 손잡고 적극적으로 칡소 복원과 사육에 들어갔다.
"외부에서 종자소를 들여와 번식시키기엔 근친교배 문제 등 한계가 있었다. 육지에서 '대리모' 격인 암송아지를 사서 칡소 수정란을 이식하는 방법을 병행했다."
초기엔 어려움도 컸다. 칡소는 누렁소에 비해 더디게 자란다. 누렁소가 28∼30개월이 지나면 식용 출하가 가능한 데 비해 칡소는 32개월에서 많게는 36개월까지 키워야 도축이 가능한 것. 축산 농가를 설득하는 것도 일이었다.
갖은 어려움 끝에 이 같은 노력은 첫 결실을 맺었다. 2010년 롯데백화점과 계약을 맺고 처음으로 상품화한 것. 울릉군은 첫해 11마리를 백화점에 공급한 이후 2011년 44마리, 지난해 79마리 등 매년 독점으로 칡소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사육되는 칡소 1천500여 마리 가운데 400여 마리가 울릉도에 있다. 울릉도에서 40여 농가가 사육하는 한우의 70%가 칡소다.
◆칡소? 약소? 헷갈리네
칡소는 누렁소보다 가격이 30∼50% 비싸지만 '고기 맛'은 탁월하다. 보통 칡소 같은 흑모 계열의 소는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보통 소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포화지방산은 융점이 낮아 고소한 풍미가 높다는 것이 이 계장의 설명이다.
'울릉 칡소'는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울릉도 한우는 '울릉 칡소'란 이름 외에 '울릉 약소'란 이름으로도 판매되기 때문이다.
사실 울릉 칡소는 품종, 울릉 약소는 울릉군의 한우 브랜드다. 울릉도 소는 예전부터 약초를 먹고 자랐다는 뜻에서 '약소'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소에게 일부러 약초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울릉도에 흔한 부지갱이 등 산에서 베어 쇠꼴로 흔히 쓰던 풀이 약초라는 의미다.
현재 울릉도 축산농가엔 누렁소가 칡소로 바뀌었지만 사육환경은 예전 그대로다. 결국 울릉 칡소는 칡소와 약소의 장점이 더해진 셈이다.
섬이라서 혈통 보존에 유리하고, 목초지가 풍부하다는 것이 울릉군이 내세우는 강점이다. 울릉군은 장기적으로 축산농가의 모든 소를 칡소 단일 품목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칡소'라고 하면 '울릉'을 떠올릴 수 있는 기반은 어느 정도 잡은 것 같다. 향후 체계적으로 잘 관리해 100년, 200년 뒤 울릉도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이 먹고살 수 있는 자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울릉'김도훈기자 h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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