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 논단] 오늘 당신의 한글은 안녕한가요?

1896년 7월 독립협회는 이 땅에 최초로 순한글로 된 신문을 세상에 내놓았다. '독립신문'이다. 순한글이란 의미는 신문에 게재된 모든 글이 한글로 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독립신문'은 논설을 통해 국문(당시에는 한글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전용으로 하게 된 것에 대해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또 국문을 이렇게 구절을 떼어쓴 즉 아무라도 이 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함이라"라고 밝혔다.

즉 국문사용에는 문화적 민주주의 사상이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급적 폐쇄성과 차별성의 극복, 나아가 지식과 정보의 공유를 통한 자기 인식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이는 민족적 자기 정체성에 대한 적극적 모색이자 그 당위성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 발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40년 이광수는 '내선 청년에 고(告)함'이란 글에서 "반도 측 청년으로서는 자기의 황민화적(皇民化的) 개조에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중략) 우선 국어를 완전히 학습하여 진정한 모국어가 되도록 노력하고…"라고 쓴다. 여기서 '국어'는 일본어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광수는 일본 평론가였던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에게 "문생(門生)은 황송하옵게도 천황(天皇)의 어명(御名)의 독법(讀法)을 본받아 가야마 미쓰로우(香山光郞)라고 창씨개명하에 오늘 호적계(戶籍係)에 신고(申告)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편지를 보낸다.

이광수가 일본어를 자신의 국어로 선택하는 순간, 그는 폐쇄적 불통의 함정에 빠진다. 정신적 몰락은 필연적 결과였던 것이다. 식민지 말기 일본이 조선어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은 한 나라의 국어가 어떻게 민족성과 이어지며 주체성을 구축하는지 방증하는 폭력적 사례이다. 말하는 대로 쓸 수 없거나 그렇게 되지 못하면 글은 권력의 도구가 되고 불통의 무기가 되며 배제와 차별을 낳는다. 언어가 소수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전용될 때 사회적 통합은 불가능해진다.

지금 우리 한글은 본래 생겨났던 대로, 바라던 모습으로 우리에게 사용되고 있는 것인가? 정치인들은 서로 상반된 입장임에도 똑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애매모호한 말과 글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현란한 불통의 말 잔치만 벌어진다. 저들에게 한글은 소통과 통합이 아니라 은폐와 왜곡, 물타기의 도구에 불과한 듯 보인다.

정치판뿐이랴. 십대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세상을 즐기고, 어른들 역시 끊임없이 폐쇄적으로 한글을 사용하고 변형해 나간다. 인터넷상에서는 알 수 없는 외계어가 판을 치고 TV 속 출연자들은 은어와 비속어, 틀린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으며 자막에는 틀린 한글이 흉측한 벌레처럼 꿈틀댄다.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보자. "나라말이 중국 문자와 달라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라." 현대어로 고쳐 본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의 앞부분이다. '훈민정음' 창제의 깊은 뜻과 '독립신문'의 한글 전용을 새삼 이어 생각해 보건대, 말과 글의 하나됨을 통해 문화적 차별을 철폐하고 생각과 뜻의 소통을 통해 국가적 통합을 꾀하려 했던 '훈민정음'의 뜻이 근대계몽기,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은 그때,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 계승되어 발현되었음은 한글의 소명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분명히 깨닫게 한다.

세종대왕과 독립신문의 편집자들은 한 나라의 언어가, 말과 글이 하나가 되는 언어가 배제와 소외, 폐쇄와 차별을 넘어서는 강력한 무기이자 근본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왜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되어야만 한다고 그렇게들 바랐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말하고 글 쓰는 내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줄, 내 글을 읽어 줄 그 불특정 다수를 배려하고 그들의 지식과 정보의 축적을 위해 나아가 건강한 비판과 그를 통한 상생의 가치 창출을 위해 지금이라도 친절한 한글지기가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

이호규(동의대 교수 국문학)

*양익준 영화감독이 개인 사정으로 9월까지만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10월부터는 새 필진으로 부산 동의대 국문학과의 이호규 교수를 모셨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