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42>칠곡에서 맞는 가을의 풍경

전쟁 기억 많은 대구 관문 이제 아카시아 향기 가득

칠곡군은 대구로 향하는 관문이자 전략적 요충지다. 6'25전쟁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것도, 조선시대 10만 명을 동원해 가산산성을 쌓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농촌 지역인데도 제조업 종사자가 많고 대구와 구미에 생활권을 둔 주민들이 상당수다.

하지만 경북에서 팔공산도립공원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팔공산 서쪽 끝자락 가산(해발 902m)의 가산산성에 가산바위까지 오르는 산행 코스는 산성과 아름다운 숲길이 어우러진다. 도시와 농촌, 자연환경과 공장 지대가 묘하게 뒤섞인 셈이다.

◆꽃향기 찾는 꿀벌의 날갯짓

칠곡군은 전국 최대 규모의 아카시아 군락지로 유명하다. 양봉 농가 수나 벌꿀 생산량이 전국 최고는 아니지만 '꿀'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만큼은 확실하다. 지금은 벌들이 한창 월동준비를 할 시기다.

오후 4시 왜관 남부정류장에서 250번을 타고 지천면 송정리에서 내렸다. 마을 안길로 공장을 지나 20여 분을 걸어 산 아래까지 들어가면 이수성 칠곡군 양봉연구회 회장의 벌꿀 농장이 있다. 헛개나무 숲 아래 늘어선 벌통 300여 개에서 벌들이 들락거렸다. 요즘은 숲이 워낙 울창해져 꿀을 채취하기 쉽지 않다. 그늘이 짙어져 햇볕을 좋아하는 야생화가 자라기 힘들기 때문이다. 응애나 노제마병, 꿀벌 부저, 충이 등 각종 병이 많아 병충해 예방에 손이 많이 간다.

양봉은 연중 수시로 꿀을 채밀한다. 설탕물을 주는 사양꿀도 있지만 천연꿀과 품질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이 회장은 "천연꿀이라도 설탕물을 전혀 주지 않는 건 아니다"고 했다. 벌들이 월동을 하기 전에 꿀을 떠낸 뒤 대신 설탕물을 줘서 겨울을 나게 한다는 것. 꿀벌의 유충과 성충의 단백질원이 되는 화분도 넣어준다. 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이 되면 설탕물로 만든 꿀은 모두 떠내고 천연꿀을 채취한다. 꿀은 벌이 꽃꿀을 벌통 안에서 저장용으로 밀봉한 후 덮개를 하고 열흘 이상 발효된 뒤에 채취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과정이 번거롭고 수확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덮개를 하기 전에 꿀을 채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수분 함량이 높기 때문에 농축해 수분함량을 떨어뜨린다. 40~45℃로 유지되는 진공농축기에 넣고 3시간가량 가열'건조해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식이다. 농축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꿀의 점도를 높이고 품질이 균일하지만 수분을 인위적으로 날리기 때문에 꿀에 포함된 효소나 영양소가 파괴된다는 주장이 맞선다.

이 회장은 "좋은 꿀을 육안으로 구분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고 했다. 설탕물을 줘서 따낸 사양꿀이나 농축꿀, 숙성꿀(봉개꿀) 등의 색깔이나 맛은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다. "부자(父子) 간에도 속이는 게 꿀이라고 해요. 결국 판매자의 양심을 믿고 먹는 수밖에 없죠."

◆사라져가는 6'25전쟁 기억들

왜관읍에서 가산면 다부리를 거쳐 팔공산에 들렀다가 군위군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오전 8시 30분 왜관읍에서 도개'천평'심곡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리면 다부동 전적기념관 직전인 학산1리다. 이 마을에는 6'25전쟁 당시 다부동에서 식량과 실탄 등을 나르는 보국대로 근무했던 최장순(84) 할아버지가 산다.

전쟁 직후 아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면서 주민들도 피란길에 나섰다. 마을에는 노인 4명만 남았고, 모두 대구로 피란을 갔다. 하지만 최 할아버지는 대구에서 보국대로 차출돼 마을로 돌아왔다. 군인들이 먹을 끼니를 나르는 것이 최 할아버지의 임무였다. 별처럼 쏟아지는 포탄과 빗발치는 총알 사이로 지게로 밥을 지고 매일 두 번씩 산을 올라야 했다. "길 양쪽에 붙어서 걸어가다가 군인들이 호각을 불면 계곡에 엎드렸다가 다시 걸었어요. 고지에 올라가면 군인들은 참호를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있었지. 길에는 새카맣게 타죽은 시체들도 있었고." 군인들은 마을에 있는 소를 모두 잡아다가 식량으로 썼다. "뭉텅뭉텅하게 고기를 썰어서 간장을 풀어 넣은 물에 삶아요. 주먹밥하고 먹는 반찬인 거라. 가끔 고깃덩어리를 내주면 가져와서 끼니를 이었죠."

마을 인근에는 밤낮없이 꿍꿍거리며 포탄이 떨어졌다. 길에는 인민군이나 국군 시체도 많았다. "유학산에만 200구가 넘는 시체를 화장했을 거라. 창호지를 끊어서 유골이라며 싸서 보내는데 다 뒤섞여 있으니 누구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 최 할아버지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국군이 북으로 진격한 뒤에야 마을로 돌아왔다. 고추가 발갛게 익고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던 때였다. 하지만 최 할아버지는 보국대에서 돌아온 직후 징집됐고, 강원도 인제에서 복무하다가 포탄 파편에 팔을 다쳤다. 아군의 낙오탄이었다. 함께 참호를 파던 4명은 모두 숨졌지만 최 할아버지는 목숨을 건졌다.

마을에서 버스로 5분만 더 가면 왜관 다부동 전적기념관이다.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벌어졌던 55일간의 혈투로 3만여 명의 희생자가 났을 정도로 격전지였다. 기념관에는 전쟁 당시 사용했던 각종 무기와 의류,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야외에는 전차, 장갑차, 각종 대포가 전시돼 있다.

◆가산산성 성벽을 걷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오전 10시 10분 동명면 방면으로 가는 버스 34-1번에 올랐다. 대구예술대를 지나 15분 정도 달려 동명면사무소 앞에서 내린다. 이곳에서 대구 시내버스인 칠곡3번으로 갈아타야 한다. 동명성당 맞은편에서 타는 게 가장 덜 헷갈린다. 오전 11시 15분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남원2리에서 내리면 된다.

가쁜 오르막을 1㎞가량 걸으면 가산산성 진남문이다. 가산산성길은 진남문에서 시작된다.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산성길의 중요한 포인트다. 진남문에서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동문으로 오르는 입구다. 잘 정비된 보도를 100여m가량 걸으면 동문과 치키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온다. 초가을 바람에 빛바랜 낙엽이 흩날린다. 가쁜 오르막이 800m가량 이어지는데 만만치않다. 삼거리부터는 울창한 활엽수림 사이로 난 완만한 숲길이 산자락을 휘감아 오른다.

빛바랜 잎을 털어내기 시작한 나무들은 이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을 2.7㎞가량 오르면 동문 주변 성벽이 나타난다. 중문까지는 직진을 해도 되고, 성곽 왼편으로 가파르게 올라도 된다. 중문을 지나면 가산바위가 가깝다. 수백여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 바위 위에 묵직해진 다리를 풀며 도시락을 먹는 이들이 부럽다. 탁 트인 바위 위에서 서면 올망졸망 솟아있는 산세에 가슴 끝자락부터 뚫리는 듯하다.

가산바위에서 성벽을 따라 동문으로 돌아와 남포루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성벽에는 곳곳에 햐얀 야생화가 피었고, 벌들이 들락날락 꿀을 따 모은다. 옛 성벽 위를 걷는 길. 좁고 아찔하지만 산 아래를 보며 걷는 기분이 꽤 특별하다. 무너진 성벽으로 길이 끝난 지점부터 좁고 험하다. 울밀한 솔숲을 지나며 안전 로프를 잡거나 난간에 의지해야 한다. 3㎞가량 내려오면 이정표 인근에서 합류한다.

오후 4시 35분 남원2리를 출발하는 칠곡3번을 탔다. 군위로 넘어가려면 동명면에서 군위군 효령면을 거쳐 가는 300번 버스를 타야 한다. 동명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55분.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쳤다. 2시간 30분을 더 기다렸다. 도착하니 사방은 온통 어둠이 내려앉았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