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다리걸' 풍경

고향마을 '다리걸'은 여느 마을의 동구와 같은 곳이었다.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어른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곳에 사람이 모여드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별로 볼거리가 없던 시절, 더러 구경거리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다리가 놓여지기 전이라 신작로는 거랑을 건너야만 했다. 신작로를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었다. 자동차나 달구지에게 그 곳은 늘 사고가 도사린 위험구간이었던 것이다.

큰물이 웬만히 져도 '제무시'(GMC) 트럭이나 완행버스 같은 큰 차는 건너기를 시도한다. 그러다가 중간에서 빠지거나 시동이 꺼지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는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밀고 당겨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운전기사도 수고비를 잊지 않고 꼭 주었다. 그 돈으로 어른들은 막걸리를 마셨다. 운이 좋으면 우리 같은 아이들에게도 과자가 하나씩 돌아오기도 했다. 비가 많이 와 홍수가 나면 학교도 가지 않아도 되고, 볼거리도 많아지니 우리들은 신이 났다.

드물게는 화목장을 보러갔던 트럭이 오르막을 오르다가 짐을 너무 많이 실어 짐칸 뒤쪽이 땅에 닿고, 앞 발통이 번쩍 들리는 수가 있었다. 그 정도가 되면 실린 짐을 다 풀어야 했다. 운전사는 누구한테 하는지 모를 욕을 퍼부어댔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운 좋게 인부로 뽑힌 이는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듬뿍 받는다. 운전기사가 쥐여주는 돈은 시골에서는 큰돈이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다리걸'에서는 군대나 도시로 떠났다가 돌아온 청년들의 무용담이 흥미진진하게도 펼쳐졌다. 듣노라면 모두가 슈퍼맨이고 액션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 이야기야 특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도시 뒷골목에서의 '17대1의 맞장' 류의 이야기는 순전히 허풍이었던 것 같다. 어리숙한 촌뜨기를 되바라진 도시가 호의적으로 맞아줬을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어찌보면 그들은 괄시받은 도시생활에 대한 보상심리를 영화같은 이야기로 풀어냈는지 모를 일이다.

유년시절 '다리걸'에서 바라본 풍경은 곧 처음 만난 세상이었다. 자동차를 보면서 문명을 읽었고, 홍수를 보면서 자연을 배웠고, 청년들의 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알았다. 도시 구경을 해보지 못한 나는 도시를 동경하게 되었고, 그 미지의 세계를 밤하늘에 그렸다. 고향 '다리걸'은 꿈을 키우던 곳인 셈이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 시절의 별들은 그렇게 초롱초롱했는지, 지금도 고향 '다리걸'에는 그때처럼 별빛이 쏟아지고 있을까?

장삼철/㈜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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