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호지킨 림프종' 앓는 김수빈 양

"항암치료 고통보다 혼자 있는 게 겁나요"

김수빈(16) 양이 할머니 손순임(67) 씨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 문을 나서고 있다. 손 씨는 21일부터 시작되는 2차 항암치료도 씩씩하게 이겨낼 거라고 말하는 수빈 양을 보면 이런저런 걱정이 앞선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김수빈(16) 양이 할머니 손순임(67) 씨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 문을 나서고 있다. 손 씨는 21일부터 시작되는 2차 항암치료도 씩씩하게 이겨낼 거라고 말하는 수빈 양을 보면 이런저런 걱정이 앞선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회처럼 날음식도 못 먹고, 채소도 다 익혀 먹어야 하고, 과일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것도 통조림 같은 것만 먹어야 해요. 그리고 또 힘든 건… 머리 빠지는 거요. 머리카락이 없으면 안 예뻐 보일 텐데, 어떡하죠?"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김수빈(16'대구 남구 대명동) 양은 음식을 마음대로 못 먹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머리가 마구 빠지는 것도 걱정이다. 그래도 수빈 양은 남이 아프다는 걸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씩씩하다.

수빈 양의 할머니 손순임(67) 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잘 견디고 있는 손녀가 대견하긴 하지만 남은 치료를 생각하면 이만저만 안쓰러운 것이 아니다. 손 씨는 "첫 번째 항암치료는 잘 견뎠지만 앞으로 이런 치료를 일곱 번을 더 받아야 할 텐데, 그때까지 몸이 견딜지 걱정"이라고 한숨지었다.

◆"암이라고요?"

수빈 양에게 큰 병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지난 8월부터였다. 갑자기 수빈 양의 몸무게가 10㎏ 가까이 빠지더니 목 부분도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기나 가벼운 부종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지어먹었다.

그래도 차도가 없자 할머니 손 씨는 수빈 양을 데리고 대구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CT 촬영과 조직검사 등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호지킨 림프종'.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림프계에 발생하는 악성종양 중 하나다. 수빈 양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제가 공부도 안 하고 놀러다닌다고 놀러다니지 말라는 뜻으로 거짓말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점점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이야기가 심각해지더라고요. 그때야 '아, 내가 큰 병에 걸렸구나' 하는 게 느껴졌어요."

수빈 양은 지난달 1차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는 고통스러웠지만 꿋꿋이 이겨냈다. 수빈 양에게 치료의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건 한창 학교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같이 지내야 할 때 홀로 병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도 감염 문제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었어요. 친구들 만날 때 마스크를 쓰는 것도 가끔 잊어버려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꾸중도 들었고요. 그때 할머니께 짜증도 내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죄송해요. 할머니 마음 다 아는데…."

◆홀로 모든 짐을 지고 버티는 할머니

수빈 양은 할머니와 남동생, 그리고 삼촌과 살고 있다. 수빈 양의 부모님은 12년 전 헤어졌다. 그 후 수빈 양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수빈 양 옆에 계시지 않는다. 6년 전 사업이 잘못되는 바람에 많은 빚을 지게 됐고, 그 빚 때문에 옥살이를 하게 됐다.

"아버지도 제 병을 알고 계세요. 할머니가 면회 가셔서 제 병 이야기를 했대요. 할머니 말씀으로는 아버지가 큰 충격을 받으셨대요. 얼마 전에도 면회를 갔다 오셨는데, 아버지가 제 걱정 많이 하신다고, 교도소 안에 있으니 아비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대요."

지금까지 수빈 양을 키워온 사람은 할머니 손 씨였다. 손 씨는 며느리가 떠나고 아들도 교도소에 간 뒤부터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트럭 운전을 하던 작은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작은아들의 도움과 손 씨가 길거리에서 떡과 삶은 옥수수를 판 돈으로 생계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4년 전 작은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뇌를 다치면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사람은 손 씨뿐이다.

그런데 손 씨도 건강하지 않다. 20년간 앓아온 당뇨에 협심증까지 손 씨를 괴롭히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혈당이 떨어진다 싶으면 어지러움이 몰려와 쓰러지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수빈 양까지 암에 걸리면서 손 씨는 손녀 간호를 위해 지금도 약을 한 움큼씩 먹으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고 있다.

◆치료를 받을 수만 있어도…

손 씨의 머릿속엔 오로지 수빈 양의 치료 생각뿐이다. 그러나 아직 한참 남은 항암치료를 받을 돈이 없어 속만 태우고 있다. 수빈 양은 1년 동안 총 8번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첫 항암치료에만 100만원 정도 들었다. 이번엔 보건소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해결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항암치료가 계속되면서 병원비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게다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약값은 온전히 손 씨의 몫이다. 손 씨는 "첫 치료에 들어간 약값만 50만원이었다"며 "이 돈이 없어 지인들에게 빌려 겨우 댈 수 있었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수빈 양 가족은 매달 90만원 안팎의 보조금으로 한 달을 산다. 손 씨마저 당뇨병과 협심증이 심해지고 수빈 양의 병간호를 시작하면서 수빈 양 가족 중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약값이 한 달 생활비의 절반인 상태에서 손 씨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도 막막하다.

수빈 양은 21일부터 2차 항암치료에 들어간다. 하지만 손 씨와 수빈 양은 병원비 걱정에 한숨만 쉬고 있다.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이젠 병원에서 무슨 치료 들어간다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고요. 제가 견딜 수 있을까도 걱정이지만, 돈도 큰 걱정이신 것 같아요. 제가 아무것도 못 해드리는 게 너무 속상해요."

수빈 양은 앞으로의 항암치료도 잘 견딜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첫 항암치료도 잘 견뎌낸 만큼 나머지 항암치료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이뇨제 맞을 때 배가 좀 아픈 거랑, 수액 맞으면서 화장실 자주 가서 짜증 나는 것 빼고는 괜찮았거든요. 남은 치료도 잘 받을 거예요."

수빈 양은 병이 나으면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병 때문에 휴학한 탓에 검정고시를 쳐서라도 대학에 갈 작정이다. 또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헤어디자이너가 꼭 되고 싶다.

손 씨는 이런 수빈 양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수빈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다. 손 씨는 "수빈이가 말은 씩씩하게 하지만 1년 넘게 받아야 할 병 치료를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계속 받으려면 영양상태가 좋아야 한다며 잘 먹이라 하는데, 지금 형편에서는 치료받는 것도 힘드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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