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명품마을, 관매도

절경과 톳'미역으로 차린 '관매정식'으로 눈과 입이 흐믓

관매도(觀梅島)는 아름다운 섬이다. '매화를 본다'는 이름에서부터 벌써 멋이 묻어 있다. 국토교통부가 다도해 국립해상공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명명했으며 산림청도 '명품 마을'로 지정했다. 무엇 때문에 이 섬을 이토록 찬사와 갈채에 휩싸이게 했을까. 섬 중에서도 겉으로 화려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뒤져보면 진흙 속에 보석을 감추고 있는 곳도 있다. 관매도는 후자에 속한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보이는 아름다움'을 제압해 버린다. 여인도 그렇다. 겉으로 볼 때 짙은 화장이 아리따워 보일 때도 있지만 대화를 해 보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겉멋이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진도 팽목항에서 출항한 정기여객선을 타고 조도, 대마도, 소마도를 거쳐 관매도에 이르면 마을은 낮은 능선 아래서 졸듯이 앉아 있다. 관매도를 바다에서 보면 여느 섬과 다를 바 없는 그냥 섬이다. 미리 준비한 지도를 들고 시간에 맞춰 가볼만한 곳을 정해야 한다. 자칫하면 뱃시간을 놓치게 된다.

동네도 구경할 겸 먼저 곰솔 밭을 찾아보는 게 좋다. 이 솔밭은 400년 전 나주 사람 함재춘이란 이가 섬에 들어와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은 게 시초다. 관매 8경 중 1경인 관매해수욕장에서 올라가면 3만여 평에 솔숲이 조성되어 있다. 명품마을로 조성되면서 '피톤치드길'로 명명된 숲속 산책길은 샛길까지 합하면 2㎞가 넘는다. 이 길은 솔잎이 카펫처럼 깔려 있어 아무리 오래 걸어도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푹신푹신한 길이다.

바닷가나 섬 생활은 바람과의 싸움이다. 바람을 이기든지 적응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방풍림을 조성하든지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아야 한다. 관매에도 솔숲과 돌담이 섬을 보호하고 있다. 관매도 관호 마을에는 '우실'이라 부르는 튼실한 돌담이 마을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우실은 '재냉기'(재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를 막아 주어 농작물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재액과 역신을 차단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 돌담 사이에 트여 있는 개방된 문과 같이 생긴 통로는 마을의 주신인 상당(마을 밖 산에 위치함)과 하당(마을 안에 있는 당산, 우물, 장승 등)의 신들이 내왕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곳 주민들은 우실을 매우 신성시한다. 우실은 마을의 경계, 자와 타의 경계, 성과 속의 경계를 지우는 선이자 벽 구실을 한다. 또 마을에서 상여가 나갈 때 산자와 죽은 자의 마지막 이별 공간으로 이용되는 성소(聖所)다. 이곳 섬사람들에겐 우실은 단순한 돌담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문화의 총체이며 삶의 집합이며 신앙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관매도에 내려 돌담길을 걷든지 곰솔 밭을 걷든지 간에 솔숲 사이로 얼른얼른 눈에 비치는 것은 맑은 옥색 바다다. 짙은 솔잎 색깔과 옅은 푸른 바다 색깔의 절묘한 대비는 '강 약 중간 약'으로 표현되는 바로 음악이다. 이 섬에는 솔숲과 바다 외에도 볼 게 너무 많다. 돌담길을 선두주자로 내세워 깃발을 들게 하고 직선이라곤 하나도 없는 논밭 두렁길, 해당화길, 매화길, 습지관찰로, 천연기념물 후박나무를 살펴보면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부부나 연인들이 함께 이 섬을 찾아온다면 우실 앞 그네가 매여 있는 언덕바지에서나 꽁돌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뒷재 언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볼 일이다. 그러면 살아온 과거와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내일이 보인다. 이 얼마나 신선한 일인가.

10여 명 단위의 청소년 소그룹이 관매도로 들어 온다면 '삼굿구이'체험을 해볼 만하다. 삼굿은 삼베의 원료인 삼대를 찌는 구덩이, 즉 찜 솥을 말한다. 지름 1m쯤 되는 큰 불구덩이에 불에 달군 작은 돌멩이를 넣고 젖은 짚과 모래를 덮는다. 막대기로 구멍을 뚫어 물을 붓고 수증기를 일으킨다. 그 열기가 옆 구덩이로 넘어가 그 속에 미리 넣어둔 고구마 감자 옥수수 계란 등이 알맞게 익는다. 고급스럽게 차려주는 한정식 음식보다 옛날로 돌아가 이렇게 원시 음식을 먹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맛있다.

관매도는 한여름에는 인파로 북적이지만 비수기 때는 여객선도 단 한 편밖에 다니지 않는다. 그렇지만 관매도 주민이 짠 생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섬 안 네 군데 식당에서 톳, 미역 등 이곳에서 채취한 해산물로 차린 관매정식(1만원)을 먹을 수 있다. 또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아 볼 수도 있고 유람선으로 걸어서는 볼 수 없는 절경을 구경할 수도 있다. 관매도는 명품마을이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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