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91년 지방의회의 부활을 기점으로 어느새 2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짧은 지방자치의 역사 그리고 미흡하기 짝이 없는 지방분권의 열악한 조건들 속에도 행정기관의 문턱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고 공무원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 등은 우리가 쉽게 지방자치의 효과로 체감하고 있는 것들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지방자치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전횡을 일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 투명한 지방행정이 이루어지도록 기초를 잡는 등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비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한 자치행정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은 어느 정도 조성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중앙과 지방 간 권한 배분의 불평등, 재정 분권 없는 권한위임 등으로 인해 오히려 지방의 중앙 의존도는 갈수록 더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경북을 비롯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정부예산을 따내기 위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중앙정부를 제 집 드나들 듯 밤낮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미 흔하디 흔한 일이 되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아무리 훌륭한 예산을 기획하더라도 중앙정부가 거부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 때문에 국가와 지방 간의 관계도 일방적인 갑을(甲乙)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중앙정부는 오히려 비수도권의 개발 격차로 인한 불만을 지방이 지방을 견제하도록 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대놓고 즐기고 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국가 개입의 논리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국가와 지방 간 갑을 관계가 비단 행정 부문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입법부인 국회가 자행하는 국정감사이다. 국정감사란 무엇인가? 국정감사는 국회가 입법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비판하는 기능으로서 입법, 사법, 행정을 포함하는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국정감사 때마다 늘 되풀이되는 일이 있다. 국회의원들은 잘 활용하지도 않으면서 매년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경쟁적으로 자료를 방대하게 요구하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본연의 대민업무는 기약 없이 제쳐놓고 밤낮으로 야근을 불사하면서 감사준비에 매달리게 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정감사는 지방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취지에 전면 역행하는 것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도 국정감사의 대상은 국가사무 그리고 국가위임사무와 국비지원사업이 그 대상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고 지방 고유사무는 국감대상이 전혀 아니다. 대신에 지방 고유사무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법에서 지방의회가 매년 1회 행정사무감사와 조사를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국감 때마다 지방 고유사무까지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감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고 규정한 헌법 제118조에도 전면 배치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국회가 위헌적인 국정감사를 강행하는 것은 입법부인 국회 스스로가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뒤흔들고 지방의회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초법적인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해마다 국정감사 대상이 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감을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왜 이리되었을까? 중앙이 지방을 동반자가 아닌 종속된 갑을 관계로 보기 때문이고 지방의 힘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지방자치의 상황에 대하여 많은 전문가는 재정 분권을 비롯한 지방분권의 미흡,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부족 등 여러 가지 원인을 말하지만 그보다는 중앙의 왜곡된 인식을 깨우칠 수 있는 지방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려면 당장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강화라는 과실을 따내려고 하기보다는 지방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우리 헌법에 행정'입법'사법의 삼권 분립만이 아니라 지방분권을 국가운영의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박성만 경상북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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