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로받고 싶어질 때 더 간절해지는 그 이름, 엄마

현대인들,'힐링' 넘어 '어머니'로

그래픽·김은미기자
그래픽·김은미기자

'엄마!'

힘들 때나 슬플 때, 기쁠 때나 놀랄 때 맨 먼저 찾게 되는 이름이다. 어머니가 없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도 어머니를 부르면 일단 살 것 같다. '엄마' 하고 불러만 봐도 그냥 좋다. 팍팍한 일상 때문일까. 학업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는 학생들, 취업난에 고민하는 청년들, 바쁜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몰라 불안해하는 중년들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엄마'를 찾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물론 힐링 뮤직도 있고 힐링 음식도 있다. 힐링 댄스도 있다. 그래도 헛헛하다. 이럴 때는 '어머니'만 한 게 없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대세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어머니와 관련된 영화, 책들도 쏟아진다. 어머니를 다룬 연극들도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어머니를 주제로 한 광고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다행히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있다.

◆중년들도 "엄마∼" 훌쩍훌쩍

17일 오전 찾은 대구 북구 칠성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이곳에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되새겨 보게 하는 뜻깊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주최하고 ㈜멜기세덱출판사가 주관하는 이 전시회는 연말까지 열린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다. 어머니를 추억하는 글들과 사진, 그리고 용품들이 반긴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싶어 발걸음을 옮겨 보니 중년 여성 몇이서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어머니의 성찬(盛饌)'이란 명패가 붙은 한 장의 사진과 사연이 소개돼 있었다.

'장모님은 작년 4월, 평생을 함께한 남편을 여의고 매일 혼자서 식사를 하신다. 서울에서 같이 살자는 자식들의 말에도 차마 고향을 못 떠나시고 자식들 먹을 양식 대준다며 논일, 밭일로 늦은 점심을 드신다. 사위의 사진 한 장 찍자는 말에 세상 근심 다 놓으시고 활짝 웃어주시는 어머니. 일 년에 두어 번 찾아주는 자식이 무에 그리 반갑다고….'

바로 옆에는 주름진 얼굴에 흰 눈이 내려앉은 듯 백발이 바람에 날리는 어르신의 사진이 걸려 있다. 어머니의 세월이 바람에 날린다는 부제를 단 '어머니의 이름으로'라는 작품. 한 장의 사진이지만 가슴이 따뜻해지고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전시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이 교회 홍득선 목사는 "각박하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점점 잊히는 마음속 고향인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지친 삶에 한 줄기 희망과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했다. 하루 400~500명이 몰려 애초 다음 달 17일까지 전시할 계획이었지만 연말까지 기간을 연장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탱큐 맘'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한국P&G 등이 주관한 이 캠페인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세요'라는 이벤트를 펼쳤다.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전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진하게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북녘땅이라고 다를까. 북한도 최근 전체 여성에 '우리 어머니'라는 호칭을 듣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평양에서 발간되는 여성 전문지 조선여성호에 따르면 "사회의 세포인 가정을 더욱 화목하고 행복하게 꾸려 부강번영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려는 공민적 자각으로 이 부름들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어머니 열풍을 소개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는 "'어머니 열풍'은 조건 없고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란 존재에 기대 힘을 얻고 싶어하는 요즘 사람들의 심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사회가 힘들고 불안해질수록 원초적 생명에너지인 모성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 '문화예술'을 품다

'엄마'가 등장하는 치유 관련 책들이 출판시장을 휩쓸고 있다. 힘든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거나 '괜찮다. 힘내라'며 지친 심신을 다독여 주고 있다. '스님의 주례사' '방황해도 괜찮아' 등 힐링 관련 책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대한민국을 힐링하기 위해 나선 법륜 스님. 스님이 지은 '엄마수업'은 2011년 선을 보인 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가 됐다. 지금까지 100만 독자를 감동시켰다. 이해인 수녀의 '엄마 나 또 올게', 입양가족의 사랑을 담은 '오늘부터 엄마', 무슬림 소녀의 엄마되기를 다룬 '딸과 엄마'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엄마가 미안해'(윤문원 지음),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을'(신현림 지음) 등도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올 들어서도 '어머니는 언제나 당신만 바라봅니다'(홍종화 지음), '가족은 선물이다'(장길섭 지음), '엄마 딸 여행'(이지나 지음) 등 엄마가 등장하는 관련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일부 서점은 힐링 도서 전용 코너까지 마련하고 있다.

15일 찾은 한 서점에는 '담대한 희망' 등 일부 책이 절판되고 없었다. '아버지가 없는데도 엄마는 나를 지탱해 주었고 순탄치 못했던 청소년기에 희망과 꿈의 나무를 심어 주었으며 언제나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셨다'라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모곡에 국적을 초월한 어머니의 사랑에 독자들은 마음을 열어젖혔다.

대구 중구 영풍문고 직원은 "어머니와 관련된 책들을 찾는 독자들이 늘었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위로받고 싶은 바람이 관련 책들의 폭발적인 판매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노래들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방송이나 라디오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음악들이 등장해 심금을 울리고 있다. 직장인 김미영 씨는 얼마 전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오랜만에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는 "이 노래를 듣다 보니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슴 따뜻해지고 뭉클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연극 무대에도 어머니가 맹활약 중이다. 수성아트피아는 얼마 전 연극 '손숙의 어머니'를 공연해 호평을 얻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분단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관통하면서 남편의 바람기, 혹독한 시집살이, 자식의 죽음까지 감내해야 했던 우리네 어머니의 이야기를 가슴 절절하게 그려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어머니의 삶을 다룬 연극 '선녀씨 이야기'도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달 12일 폐막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영화 '아들의 자리'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상실감을 다뤄 호평을 받았다. 또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에서는 이달 초까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전시회가 열렸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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