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와 심산은 상해 망명시절 친분이 두터웠다. 학식이 풍부하여 관서의 인물로 일컬어지던 김달하가 일제의 밀정이라는 사실을 심산에게 알려준 것도 도산이었다. 임시정부가 창조와 개조파로 다툴 때 도산은 일송 김동삼과 더불어 창조를 주장했다. 심산은 창조로 분열하여 화근을 기르는 것보다 화합하여 개조하는 편이 낫다며 도산과 뜻을 같이하지는 않았으나 둘의 믿음은 깊었다. 심산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됐을 때 안창호도 같이 수감되어 있었다. 심산과 도산이 모두 가출옥했을 당시 도산이 심산을 찾은 적이 있다. 단재 신채호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이때 상황을 전한 심산의 시가 있다.
'어제 단재의 혼을 통곡해 보냈더니/ 오늘 뜻밖에 도산이 찾아왔네/ 넘어질 듯 부여안고 말문을 열지 못하는데/ 눈물만 비 오듯 입술을 적시네/ 심은후(송나라 사람으로 늙은 친구를 이별하면서 시를 지어 회포를 전한 고사의 주인공)의 송별시를 다시 외며/ 짐짓 손을 잡고 떠나지를 못하네.'
도산은 흥사단 사건으로 투옥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중 사망했다. 울산 백양사에서 도산의 사망소식을 들은 심산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는 애절한 심정과 동지를 잃은 아픔을 표현한 만시를 짓기도 했다.
심산은 벽초 홍명희와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다. 경술국치 때 순국한 홍범식의 아들로 문학자의 명성을 쌓아가던 벽초의 능력을 심산은 높이 사고 있었다. 벽초와 심산은 조국의 해방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을 시를 통해 전했다. 벽초에게 보낸 심산의 시는 그가 벽초를 얼마나 높이 인정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세상에 같이 나서 마음도 같아/ 천 리 밖 그대 생각 잊을 길 없네/ 원컨대 요괴한 기운 말끔히 걷히는 날/ 오래오래 손잡고 다정히 만나보세나.' '벽초의 얼굴 본적 없으나/ 벽초의 마음 잘 아네/ 만나보지 못함이 무슨 한 되리오/ 그대의 마음 곧 내 마음인 것을.'
벽초와 심산의 만남은 해방 이후 서울에서였다. 둘은 정당이 난립해서 서로 싸우는 해방 정국을 안타까워했다. 벽초는 심산이 정당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더없이 칭찬하며 자신도 맹세코 정당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벽초는 민주통일당을 창립해 자신이 당수가 됐다. 심산은 이 일을 두고 자서전에서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알기 어려운 것이라고 회고했다.
서영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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