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에게 상식으로 통하는 것이 신세대들에게는 특수한 지식으로 생각되는 것이 있다. 반대로 신세대들에게 상식으로 통하는 것이 기성세대에게는 특수한 지식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수업시간 중에 어쩌다 포스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포스터는 누구나 알 만한 미국의 민요 작곡가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재차 물었다. "미국 민요 작곡가, 포스터를 몰라요? 멀고 먼 추억의 스와니를 작곡한." 학생들은 '스와니 강'을 모른다고 했다.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요도 작곡가가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포스터의 노래에는 미국의 개척 정신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공통 주제로 담겨 있다. '오, 수재너' '스와니 강' '켄터키 옛집' '올드 블랙 조' '금발의 제니' '아름다운 꿈' '시골의 경마' 등 포스터의 노래는 천재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연발생적인 선율과 19세기 미국 사회의 토착성이 짙게 깔려 있어서 미국의 대표 민요라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로버트 쇼 합창단에서부터 로저 와그너 합창단, 몰몬 테버너클 합창단에 이르기까지 포스터의 곡은 미국 유명 연주단체의 변함없는 레퍼토리가 되어왔다.
멀고 먼 추억의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날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
아 그리워라 나 살던 곳 멀고 먼 옛 고향
스와니 강은 작곡가 박태준의 형 박태원이 번안을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불려왔다. 사춘기에 배운 음악들은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세계관이나 미의식 형성에도 작용하는 바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개척시대, 고향을 떠나 타향을 헤매는 흑인 노동자들의 사연은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1960~80년대까지도 가난이나 학업,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사정과 별다를 바 없었다. 단순한 가락과 소박한 가사의 행간에는 수많은 사연이 숨겨져 있다.
가사에 나타나듯 고향은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며,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이겨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서야 도달할 수 있는 한 지점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먼 곳에 있다. 고향이 가지는 영원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는 천국의 이미지와도 흡사하다. 여기에는 내세를 지향하는 청교도들의 신앙관이 깔려 있다고 하겠다.
스와니 강은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동경의 장소였다. 그것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공간으로 우리들 기억의 지평을 흐르는 영원한 강이었다. 그래서 이 강의 구체적인 위치나 실재성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들어가 스테판 포스터를 치면 스와니 강과 켄터키 옛집, 블랙 조의 농장 등 포스터의 자취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블로그가 드물지 않게 보인다. 그들은 한때 자신들을 키운 마음의 고향, 그들의 성장기를 흐르던 풍요로운 강을 찾아 나선 것이다.
고향은 오래도록 민요와 대중가요의 비중 있는 소재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고향은 언제든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 되었다. 대중가요에서도 '고향'의 의미는 점차 쇠퇴해져서 고향 이야기를 들먹이는 노래는 뒤떨어진 촌스러운 노래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와니 강은 조지아의 습지에서 발원해 플로리다로 흐르는 작은 사행천이었다. 그러나 포스터에 의해서 세계인의 강이 되었다. 강가에는 그의 기념관이 서 있다. 지금 스와니는 고향의 포근함을 상징하는 특별한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스와니라는 이름을 가진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유통되고 있다. 포스터의 노래가 세계인이 공유하는 노래가 된 것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성과 통일성, 또한 이것과 상반되는 특수성과 다양성을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영처 시인'영남대 교책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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