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절차탁마(切磋琢磨)

바람이 구름을 수놓아 춤추는 가을 하늘의 빛깔이 참 곱다. 가을걷이를 일찍 끝낸 논에는 양파 모종이 새파랗게 오르고 있다. 모든 것이 결실을 향해 가고 초목들도 시나브로 단풍으로 물들어져 가는 날에, 햇살 반짝이며 일렁거리는 푸르디푸른 양파밭의 풍경은 아이러니하다.

남은 가을걷이도 끝내야 하고, 양파밭에 물도 줘야 하니 농사에 있어서 가을은 끝과 시작의 공존인 셈이다. 가을은 모든 것을 갈무리한다지만 또 다른 시작의 계절이라는 것을 부지런한 농부들이 일깨워 준다. 그것은 온 힘을 다해 과실을 붉게 하고 내년 봄을 기약하는 뒤뜰 감나무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겨우살이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의 세상살이 또한 같은 이치일 것이다. 국가나 사회도 변화하는 계절과 같은 속성이 있고, 종교를 이끌어 가는 종단 조직도 어찌 그와 같지 않으랴!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제34대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다. 지난주 치러진 선거는 311명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50표의 차이로 승리하였다. 이는 현 총무원장의 지도력에 대한 전국적인 지지의 결과일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지지로 연임을 허락한 국민들과 불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숙제도 안게 된 것이라 하겠다. 자승 스님은 당선 인사에서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종단 운영에 진력을 다하고,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 더욱 정진할 것임을 밝혔다.

어떤 일에든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한 물리적 시간을 넘어 자르고 쓸고 쪼고 갈아 닦는 인고의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급해도 돌아가는 심정으로 순서를 밟아 다듬고 또 다듬어 가면 훌륭한 물건은 탄생된다. 그런데 요즘의 세태는 매사에 급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치우치기 일쑤이다. 개인적 감정을 참으려 하지 않고 현대적 통신 수단을 악용해 가면서까지 욕구를 표출해 낸다. 지식이 지혜가 되지 못하고 한갓 기술로 답습되어 가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느 조직이든 그 구성원의 협조가 있어야 성공한 지도자도 나오는 법이다. 큰일일수록 기다림과 이해의 미학이 필요한 대목이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사랑하고 보듬어 안아줄 때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니 자승 총무원장의 새로운 집행부와 모든 불자들이 절차탁마의 심정으로 이 땅에 불국토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지난 인고의 세월로 싹 틔웠던 이 가을의 결실이 한국불교의 백년대계를 위한 또 다른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볕을 받은 초록들이 엷은 눈부심으로 빛나는 오늘, 어제에 대한 아팠던 기억들이 내일의 새로움으로 탈바꿈을 한다. 아쉬움뿐일 것 같았던 이 가을날, 우리는 오해와 시기심, 욕심을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여야 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곁에 있으며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 영원히 살가운 존재로 남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지거 스님. 동화사 부주지'청도 용천사 주지 yong1004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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