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에게 불렸던 할머니의 이름은 '월막댁'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왜 할머니가 월막댁인가 궁금했습니다. 할머니께 여쭤보니 '월막'이 당신 고향이라 그렇다 하셨습니다. 타지에서 시집 온 할머니를, 마을 사람들은 고향 이름을 따 불렀던 겁니다. 월막댁이 사는 집은 그래서 '월막댁네'가 되고, 그 남편은 '월막 양반'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부르고, 규정하는 데 있어서 '공간'의 이름을 흔히 빌려 씁니다. '대구 사람' '구미 사람' '영천 사람'이란 명칭은, 그 말을 듣는 상대방에게 어떤 이미지와 기억을 상기시킵니다. 공간은 이처럼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부여하는 것입니다.
근래 대구 청년을 대표하여 이곳저곳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공통으로 호소하는 문제는 '공간'이었습니다. 청년들 모두 서로 만날 장소가 부족하고, 일을 벌일 터전이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은 곧 대구 청년에겐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이 만들어질 곳이 부족하단 뜻이었습니다.
대구에서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는 동성로가 꼽힙니다. 하지만 동성로를 대구 청년의 대표 공간이라 부르기엔 좀 주저됩니다. 청년들의 자유로운 시도와 문화를 대표하기에 동성로는 너무 상업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까닭입니다. 경북대학교 앞의 대학가나, 대명동 계명대 근처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경북대 앞은 작은 동성로에 가깝고, 대명동 계대는 예전의 극단과 클럽이 활기를 잃으면서 이전의 분위기를 잃었습니다. 대구에서 문화와 지역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 그것은 문화와 지역을 이야기할 청년들 역시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과감히 청년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준 다른 지역의 선례는 그래서 참고할 만합니다. 올해 서울시는 젊은 일꾼들을 위한 '청년일자리허브'를 열었습니다. 놀랍게도 청년들을 위한 전문 지원 기관은 '청년허브'가 처음이라 합니다. 청년들의 '비빌 언덕'을 지향하는 이곳에 실제로 청년들이 입주하여 먹고 잡니다. 사무실과 창작실, 아카데미를 갖추고 있어 하루가 멀다고 청년을 위한 교육과 모임이 열린답니다.
전주에도 청년을 위한 색다른 공간이 있습니다. 전통시장 활성화의 일환으로 진행된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남부시장은 시장의 2층을 청년들에게 내어줬습니다. 이름하여 '청년몰'입니다. 청년들은 남부시장에 둥지를 틀고, 자신의 첫 가게를 열었습니다. 각종 다양한 문화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리는 것은 물론입니다. 덕분에 남부시장은 색다른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시장 상인들과 청년들의 융합은 지역의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때 대구의 방천시장도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예술가와 청년들이 상주하였습니다. 그 결과 '김광석 거리'라는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방천시장에 그들은 없습니다. 그 대신 김광석 거리의 유명세를 업은 상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몇몇 상가를 제외하면 여전히 방천시장은 휑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청년이 떠나버린 방천시장과, 청년이 살고 있는 남부시장. 방천시장도 남부시장과 같이 청년과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게 했다면 분명 지금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대구의 청년들이 서로 만나고 모이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지치고, 누군가는 현실에 실망하며 결국 길을 돌립니다. 지역의 청년 모두가 떠돌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맘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점점 절실해집니다. 만약 지역의 청년들이 마음껏 비빌 공간이 생긴다면? 상상만 해도 재밌어집니다. 청년들이 '비빌 언덕'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일을 꾸미는 날이 우리 지역에도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구경북 대학생문화잡지 '모디' 편집장 smile5_32@naver.comsmile5_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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