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한 라면 회사의 TV 광고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코미디언 구봉서와 지금은 고인이 된 곽규석이 라면을 먼저 먹으라며 양보하는 광고였다. 간절히 먹고 싶은 라면을 동생 앞으로 갖다 놓으며 아쉬워하는 형과 라면 그릇을 건네받고 미안해하면서도 흐뭇해하는 동생의 모습이 재미있고도 훈훈하게 표현됐다. 이 광고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매출에도 크게 기여, 후발 주자였던 라면 회사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으니 그야말로 '대박 광고'였다.
국회 국정감사를 지켜보면서 문득 이 광고가 떠오른 것은 국정의 민낯이 훈훈함과는 정반대로 드러나는 역설적 상황 때문이었다. 정부 정책 중 유리한 것은 서울에서 먼저 시행되고 불리한 것은 지방에서 먼저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가감 없이 나타나고 있다. 국정감사가 국회의원들이 증인을 상대로 호통치고 제 말만 하는 경우가 많아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하나 국정의 그늘을 들춰내 바로잡을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유효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국감 자료로 제시된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은 환경 피해에 따른 주민들의 우려를 덜어주지만,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두드러진다. 서울의 송전선로 지중화율은 88.2%에 달하나 대구는 30.2%, 경북은 0.9%에 불과하다. 대구는 7대 광역시 중 5위이고 경북은 전국 꼴찌 수준이다. 서울 내에서도 고위 관료와 부자들이 많이 사는 강남 지역의 지중화율은 서울 평균을 웃돌지만. 서민들이 많은 강북 지역은 30~50%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도시의 전력 공급을 위해 밀양, 청도 등에 송전탑을 지으려 하는 것도 환경 불평등에 해당한다.
원자력발전소도 경북 울진, 경주, 부산 기장군 고리, 전남 영광 등 서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날 경우 서울 사람들은 피해를 보아선 안 되고 지방 사람들은 피해를 당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닌가. 전기 수요가 많으면 수요자 부담 원칙에 따라 원자력발전소와 송전탑도 가까운 곳에 짓도록 강제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경제 집중, 문화 지원 등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 중심 국정이 너무나 오래 이어져 당연할 정도로 익숙하고 무감각한데 정부 관료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똥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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