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상시(常時)국감

현 정부 들어 첫 번째 실시한 국정감사가 절반가량 소화됐다. 이번 국감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피감기관 수도 630여 곳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 수도 193명으로 역대 최다이다. 그러다 보니 시작 전부터 우려가 많았다. 피감기관이 역대 통틀어 가장 많고, 부른 증인도 너무 많아 자칫 '깡통 국감'이 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었다. 22일로 감사 여드레째를 맞은 현재, 혹시나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된 느낌이다. 해마다 국감이 끝나면 등장했던 '국감 무용론(無用論)'이 이번엔 국감 한중간에 정치권에서 스스로 나오기 시작했다.

국감이 한창이던 17일 한 상임위의 국감장 앞에서 만난 한 정치인은 "14일간 제대로 감사가 이뤄지겠느냐"면서 "수박 겉핥기식에 국회의원이 저 할 말만 하는 이런 국감이 무슨 소용 있느냐"고 했다.

국감장 몇 곳만 다녀보면 이 정치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기업인 40~50여 명을 국회로 불렀다. 하지만 기업 이름만 보고 부동산임대업을 외제차 수입업으로 착각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증인을 부르는가 하면, 기업인들로부터 전후 사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소명을 듣기보다는 "'예' '아니오'로 짧게 대답하라"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 기업인은 3시간을 기다려서 "나는 그 일과 관계없다"는 답변만 남긴 채 국감장을 빠져나왔고,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날린 기업인도 있었다. "4시간째 대기 중인데,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시간이 (우리 기업인에겐) 얼마나 중요한데…"라고 혼잣말을 하는 기업인도 있었다.

국정감사(國政監査)는 헌법이 국회에 준 고유 권한이다. 국회가 행정부의 전횡(專橫)을 견제하고, 정부 정책과 예산 집행 등을 감시'조사해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뜻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의 국감은 헌법 본래의 취지를 완전히 잊은 듯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상시(常時) 국감'으로 가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상시 국감은 국감을 정기국회 기간에만 실시하지 않고, 상임위별로 탄력적으로 상시에 하자는 것이다. 정기국회에 예산안 심사와 법안 심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국감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지금의 '무차별적'인 피감기관'증인 채택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오래전부터 상시 국감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국회의원들은 업무 부담이 커지고 선거구 관리에 소홀해질까 우려해 반대해 왔다"면서 "이번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제대로 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18대 국회 당시 국회 운영위원회는 그간 국감의 문제점으로 ▷사전 준비기간 부족 ▷감사대상 기관 과다 ▷법적인 사후 통제수단 미비로 인한 감사결과 사후처리 미흡을 들었다. 개선 방안으로는 ▷정기국회 시기를 피해 임시회 기간으로 한정하고 ▷상임위별로 실시하며 ▷내실 있는 국감을 위해 대상 기관을 격년제 등으로 분류해 피감기관 수를 대폭 축소할 것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이런 국정감사 내실화 방안은 여야 원내대표실 서랍 속에 잠자는 듯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