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는 비단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영어 스트레스'와 맞닥트린다. 농촌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느낀 사례다.
읍'면의 구멍가게에는 보통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담배를 사려고 담배 명을 대면 직접 찾아가라고 하실 때가 많다. 어르신들은 "요즘 담배는 꼬부랑 말이 많아서…"라며 쑥스럽게 웃으신다. 국산담배 상표가 온통 외국어로 도배돼 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하다. '에세' '디스''클라우드9''블랙잭' '심플''레종''타임''더 원'… 한국말은 하나도 없고 온통 영어로만 표기해놓았으니 국산담배인지, 양담배인지 헷갈리기 일쑤다.
국산을 애용하겠다는 애국심은 변함없지만, 이런 꼴을 보면 울화통이 치밀곤 한다.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골백번도 더 들지만, 의지가 박약해 아직까지 끊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제조사인 KT&G는 영어 상표에 대해' 해외 수출과 젊은 층의 기호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얄팍한 상술의 전형이다. '솔' '거북선' '한산도' 같은 정감있는 예전 담배가 그립다.
요즘 포스트 시즌 야구 중계에서 사회자와 해설자가 영어를 남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찰 따름이다.'1점 앞서고 있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1점차 리드(lead)를 지키고 있다'는 어려운 말을 쓴다. 사회자가 '루킹 스트라이크아웃' '백투백홈런'이라고 흥분해 외칠 때에는 더욱 황당하다. '서서 삼진' '연속타자 홈런'이라고 하면 충분할 것을 왜 어려운 영어로 지껄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박한 야구지식과 해설로 유명한 허구연 씨도 중계 중 별다른 설명 없이 '저 팀은 클로저(closer)가 잘 안돼…'라는 말을 썼다. 좋은 우리말인 '마무리'라고 바꿔 말하면 해설의 권위가 훼손되는가. 선수 출신 해설자들도 두산과 넥센전을 두고 리버스 스윕(reverse sweep'2연패뒤 역전 3연승 혹은 역 싹쓸이)이라는 용어를 내뱉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은퇴 후 영어공부를 많이 했는지, 아니면 철자라도 제대로 알고 쓰는지 궁금해진다.
세계화 시대에 그 정도 영어는 쓸 수 있지 않으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영어를 오남용 하다 보면 결국에는 우리말을 훼손하고 정신까지 멍들게 한다. 솔직히 우리가 소설가 복거일 씨처럼 '영어 공용화'를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는 민족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말을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은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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