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벌어지는 의사 폭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료 중이던 의사를 흉기로 찌르고, 자기보다 늦게 응급실에 온 환자를 먼저 진료했다며 의사의 머리를 의자로 내려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응급실 전문의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50%가 폭행을 당한 적이 있고, 39%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답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5년간 진료 관련 폭행으로 숨지거나 중상을 입은 의사만 8명에 달한다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3개월 전 경북 구미에 있는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도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의사협회와 경북도의사회가 밝힌 내용과 검찰 수사 자료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 새벽 5시쯤 40대 남녀가 응급실로 찾아왔다. 여성은 복통을 호소했고, 당시 응급실 당직 인턴 의사는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인턴 의사는 여성이었다.
함께 온 남성은 "이건 내가 겪어봐서 알지만 위경련일 뿐이다"며 검사 중단을 강요했다. 인턴 의사는 "남성이 문신이 새겨진 팔을 들고 위협하며 검사는 다 필요 없고 주사나 놔주라며 소리를 질렀다. 검사를 안 하겠다는 서명을 하면 원하는 대로 주사를 놓아 드리겠다는 말을 했지만 5차례 이상 거절하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두려움을 느낀 인턴은 간호사실로 피했지만 남성은 간호사실 문을 부술 듯이 차고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그런데 정작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이때부터다. 경찰이 진료를 방해한 환자를 두둔하며 인턴에게 오히려 사과를 종용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 인턴은 "경찰이 출동했지만 오히려 내게 사과를 하라는 분위기였다. 진료 방해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그날 상황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인턴은 의사회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대한의사협회와 경북도의사회가 나서자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당시 응급실에서 당직 의사를 죽이겠다며 협박하고 난동을 부린 김모(42) 씨를 최근 구속했다. 응급실에서 일상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 협박과 난동인데 구속이라니.
검찰에 따르면, 구속된 김 씨는 폭력 조직 '구미 연주파' 행동대장을 맡았던 인물로 폭력 전과가 12차례나 됐다. 1년 전에도 같은 병원에서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검찰은 "병원에서 절차를 벗어난 막무가내 요구, 폭언으로 다른 환자 진료가 방해되는 사례가 늘지만 대부분 형사 사건화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응급 환자들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여서 엄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응급실에 출동한 경찰관 2명도 징계를 받았다. 구미경찰서 관계자는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아 징계했다"며 "구체적으로 답할 수는 없지만 경징계를 내렸다"고 했다.
흉기를 꺼내거나 의자로 내려친 것도 아닌, 어찌 보면 '조금 다른 양상의' 병원 폭행인데 사건이 됐고 검찰 수사까지 이뤄졌다. 만약 인턴 여의사가 이 일을 당하고도 침묵했거나, 난동을 부린 남성이 조직폭력배가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 사건화되기는커녕 그저 그런 의사와 환자의 다툼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끝날 일일까?
세상에 얌체들은 참 많다. 꽉 막힌 도로에서 끼어들기 하는 사람, 그래 놓고 뒤에서 경적 울린다고 되레 쌍욕을 해대는 사람, 장애인이 타지도 않았는데 장애인 차량이라는 이유로 전용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 이를 제지하는 주차관리원에게 똑바로 일하라며 삿대질하는 사람(아마 정신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등등. 백번 양보해서 이런 얌체들도 있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치자. 제 욕심 먼저 차리려고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정도라고 웃어넘기자. 그런데 응급실 폭행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의사가 모두 옳다는 말은 아니다. 실수도 하고 그에 따른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고함을 치고 의사의 멱살을 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응급실에서 이런 행동은 얌체 짓이 아니라 범죄다. 응급실 진료는 먼저 온 순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위급한지가 가장 중요하다. 세상 어느 공간보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절실한 곳이 바로 응급실이다. 내 손톱 밑 가시 때문에 아프다고 악을 쓰며 난동을 부리는 새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와 가족은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정말 누군가 죽어나가 봐야 정신 차릴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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