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한상〈韓商〉, 글로벌 코리아의 기수

19세기 말 일본에서 활동하던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목사이자 동양학자 그리피스(W. E. Griffis)는 조선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채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만 의존하여 조선 역사에 대해 책을 쓰고 책명을 '은둔의 나라 조선'(The Hermit Nation Corea)이라 붙였다. 은둔이란 단어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나 결국 그가 서양에 소개했던 조선은 쇄국으로 빗장을 걸어 잠근 무기력한 이미지의 나라였다. 그리피스가 무역으로 세계 10위권의 국가 경제 규모를 만들어낼 진취적인 기상이 우리의 핏속에 흐르고 있었음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가 다시 태어나 세계 5대양 6대주 모든 곳에 진출하여 경제활동을 하며 부를 일구고 있는 우리 한인 경제인들의 모험가 정신을 본다면 한국을 운둔의 나라가 아닌 어떤 나라로 소개할는지 궁금하다.

한상(韓商)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5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이민사에서 한상은 1960년대 미주 지역으로 이민이 본격화되면서 출현하였고 198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성장하였다. 한상은 아직 전체적으로 경제 규모 면에서나 영향력에 있어 세계의 대표적인 민족 네트워크인 중국의 화상(華商)이나 유대인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상은 동남아와 미국에, 유대인상도 미국, 유럽, 남미 일부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역사도 길다. 그들에 비하여 짧은 기간 중 한상이 보여준 성장세는 참으로 놀라울 정도이다.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 일본에서 성공한 한상들은 물론이지만 아프리카 오지를 비롯하여 극도로 치안이 나쁜 중미 지역, 문화적인 어려움과 제약이 그 어느 곳보다 심한 중동 지역, 보통 사람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을 서태평양이나 카리브해의 조그만 섬나라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수없이 많은 한상들이 우리 민족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근면 성실함으로 현지에서 뿌리내리고 경제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앞으로 한상이 성장할 잠재력은 무한하다. 개개인의 역량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현재 세계 175개국에 퍼져 있는 700여만 명의 재외동포를 연결하는 세계적 차원의 한민족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국내 경제와 연계될 때 그 시너지 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한상들의 가장 큰 비즈니스 교류의 장인 제12차 세계한상대회가 '창조경제를 이끄는 힘, 한상 네트워크!' 슬로건 아래 29일부터 사흘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해외 한상 1천여 명, 국내 기업인 2천여 명이 참석하게 되는 이번 대회는 식품외식, 첨단 IT, 섬유 패션 등 분야에서 기업 전시회, 일대일 비즈니스 미팅, 국내 중소기업들과 멘토링 세션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해외에서 온 한상들과 국내 경제인들이 전문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상생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한민족 경제인 네트워크'의 확장을 도모하는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그동안 대회를 거치면서 세계 한상 네트워크의 주축이 되어온 1세대 한상과 꾸준히 대회에 참석해왔던 한상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신진 한상들이 참여함으로써 계속 확대 발전하고 있는 한상 네트워크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45세 미만 한상들의 교류 모임인 영 비즈니스 리더 네트워크(YBLN)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젊어진 한상대회가 될 것이며, 이들이 국내 청년 기업인들과 함께하는 모임은 모국과 재외동포사회가 상생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의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날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국가 간의 경계는 흐려지고, 민족 간 유대가 강화되고 있다. 또한 국가보다는 지방자치정부, 기업, 개인이 경제활동의 주체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모든 나라가 해외에 있는 자신들의 민족 집단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는 이유이다. 얼마 전 이민 관련 학술모임 참석차 서울에 온 한 그리스 학자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화 시대에 세계를 아우르는 민족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한민족 동포사회는 한국의 미래에 큰 축복이라고 했다. 한상들이야말로 국가 경제영토 확장의 상징이요, 글로벌 코리아의 기수이다. 제12차 한상대회의 성공을 기원한다.

조규형/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전 주브라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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