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심 가로수 '민원 수난시대'

간판 가린다. 경관 헤친다…가지치기 요청 연 800건

23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수성구청 건너편 가로수 세 그루가 잎이 시들고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23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수성구청 건너편 가로수 세 그루가 잎이 시들고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23일 오전 대구도시철도 2호선 수성구청역 1번 출구에서 70여m 떨어진 곳에 양버즘나무 한 그루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었다. 10~15m 높이의 나무 3분의 2는 줄기의 껍질이 벗겨진 상태였다. 이 양버즘나무 옆의 나무 세 그루도 전체 나뭇잎의 30~50% 정도가 끝 부분부터 갈색을 보이며 말라 들어가 있었다. 수성구청이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탄저병균이 나왔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누군가가 일부러 약물을 투입해 고사시키려 한 것이라고 했다.

대구 도심 가로수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경관을 해치거나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 등의 가로수 민원이 점차 늘고 있는 것. 심지어 일부 가로수는 약물 주입이 의심되는 테러까지 당하는 실정이다.

◆빗발치는 가로수 제거 민원=대구 북구 태전동 태전삼거리 인근 칠곡중앙대로변 한 상가의 임차인은 가로수가 간판을 가린다며 북구청에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상가 앞쪽 도로변에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다른 곳에 비해 나무 사이 간격(6~7m)이 좁고 나무줄기도 굵어서 간판의 대부분을 가린다는 것이다. 뻗은 나뭇가지 때문에 2층 간판 설치 작업에도 지장을 줬다는 게 임차인의 하소연이다.

대구 북구 산격동 D아파트 상가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한 주민도 "잎이 넓은 양버즘나무 때문에 간판이 다 가려 학원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나무를 뽑을 수 없다면 몇 달에 한 번씩이라도 가지치기를 해달라"고 북구청에 요청했다.

이처럼 대구시 가로수 관련 민원 중에는 '경관 훼손'과 '간판 가림' 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2010~2012년 3년 동안 접수된 대구시 가로수 민원 5천216건 중 경관 훼손(1천216건)과 간판 가림(1천81건)이 전체의 44%인 2천297건에 달했다. 특히 경관 훼손과 간판 가림 민원은 2010년 714건에서 이듬해 772건, 지난해 811건으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시 조례에 따르면 경관을 해치거나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는 가치지기를 할 수 없다. 다만 나뭇가지가 전선이나 건물에 닿을 경우 일부 가지를 쳐낼 수는 있다. 이를 무시하고 가로수를 훼손할 경우 형법상 재물손괴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더불어 훼손한 가로수와 동일한 수종과 크기에 해당하는 수목 복구비를 내야 한다. 20~40년 수령의 10~15m 높이 양버즘나무의 경우 수목 복구비가 약 500만~600만원에 달한다.

◆고의 훼손도 적잖아=가로수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면서 가로수에 테러를 가하는 경우도 적잖다. 지난해 6월 대구 동구청은 봉무동 팔공로 인근 조경지의 모과나무 10여 그루가 말라죽은 것을 발견했다. 나무줄기에 구멍이 뚫려 있는 등 약품을 주입한 흔적이 있었다. 동구청은 누군가 고의로 나무를 훼손한 것으로 보고 곧바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주변에 인적이 드물고 CCTV가 없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종결됐다. 대구시에서 파악한 '고의 훼손' 가로수는 지난해 18그루, 올해는 현재까지 9그루나 됐다.

대구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도심 가로수는 매연에도 강하고 녹음이 풍부한 수종이어서 도심 열섬현상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기능을 함에도 상가 간판 등을 가린다는 이유로 철거를 요구하거나 무단으로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훼손된 가로수 인근 주민들이 신고를 하는 경우는 많지만 목격자와 증거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아 실제 처벌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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