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성 100년의 맛] 사찰음식

갖가지 콩 음식에 정성들인 장맛…깔끔한 '건강 밥상'

요즘 현대인들은 '남보다 빨라야 살아남는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어디서든 속도전이다. 음식에서도 빠른 시간 내 간단한 조리과정만 거쳐 제공되는 패스트푸드가 넘쳐나고 있다. 열량, 고지방, 고염분인 패스트푸드는 결국 각종 성인병을 불러오게 된다.

그래서일까. 최근 먹거리를 주로 자연 속에서 찾는 힐링푸드 열풍이 불고 있다. '사찰음식'이 대표주자다.

대구에서 성서를 지나 강창교를 건너가면 도시철도 2호선을 따라 개발된 죽곡지구가 나온다. 2호선 대실역 2번 출구로 나가 20여m쯤 걸은 후 큰길을 따라 좌회전을 해서 쭉 걸어 올라가면 '정강희두부마을'이라는 식당 간판이 보인다. 달성군으로부터 사찰음식 전문점으로 지정받은 4곳의 식당 가운데 한 곳이다.

이 식당의 정강희(48) 사장은 5년 전 식당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간판에 내걸었다. 음식에 관한 한 누구와 겨뤄도 자신이 있기 때문이란다. 또 콩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메뉴가 많아 자신의 이름에다 '두부마을'을 병기한 것이다. 그는 요즘 콩과 두부를 활용한 사찰음식 개발에 푹 빠져 산다. 물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내세운 지는 오래됐다.

가끔 소문을 듣고 처음 찾아오는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정 사장에게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가 뭐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그때 정 사장은 손님들에게 "맛을 위해 만든 음식은 딱히 없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면 모두 좋은 음식으로 생각하고 드시라"고 권하고 있다. 얼마 전 식당 오른쪽에 두 칸짜리 황토방을 마련했다. 한쪽은 요리 공부방이고 다른 쪽은 메주나 청국장을 발효시키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그의 공부방 서가에는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농상집요,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산가요록, 제민요술, 동의보감, 동의학사전 등 전통의학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식당이 아니라 마치 서점이나 도서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서적 곳곳에 숨어 있는 음식 관련 구절들을 찾아 이를 실제로 응용하기 위해 수집한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 대구한의대의 글로벌리더 과정을 이수했고 요즘은 경남 합천군 소재 한국전통식품연구소의 우리나라 장(醬)을 연구하는 과정에도 등록하는 등 음식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공장 자동화 시스템 업계에서 유명 엔지니어였던 동갑내기 남편 변용규 씨도 얼마 전 자신의 일을 접고 정 사장 돕기에 나섰다. 식재료에 사용되는 각종 채소를 자신의 밭에서 재배한다. 현재 4천여㎡ 밭에는 배추, 무, 파 등 화학비료나 농약을 줄인 친환경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또 그때그때 쓸 만큼의 두부를 직접 제조해 식당에 공급해준다. 이 집 두부는 그동안 간수가 아닌 심층 해수를 응고제로 사용하는 '초당두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내년부터는 해수가 아닌 소금간수를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원전사고 등으로 해수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전라도 염전에 가서 천일염 1천t을 구매해 묵히고 있다. 소금은 오래될수록 맛이 좋고 몸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그 집 음식 맛을 알려면 장맛부터 봐야 한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뚝배기보다 장맛'…. 정 사장은 사찰음식을 비롯한 전통음식의 기본은 장이라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 알려진 장의 종류는 160가지에 달한다. 그는 현재 된장, 간장, 청국장은 물론이고 누룩장, 콩잎장, 팥장, 메밀장 등을 담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으나 현대에는 사라진 어육장(魚肉醬)에 대한 연구에 나섰다.

어육장은 어장, 육장, 혼합한 어육장 등으로 구분하는데 어장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육장은 주방문(酒方文), 어육장은 산림경제(山林經濟)와 규합총서(閨閤叢書)에 기록돼 있다고 전해준다.

담그는 방법도 상세히 알려줬다. 쇠고기를 항아리 밑에 깐 후 메주를 넣고 그 위에 생선, 닭고기, 꿩고기 등을 메주와 함께 켜켜이 쌓는다는 것. 메주 1말에 소금 7되 비율로 끓여 식힌 물을 붓고 뚜껑을 덮고 땅에 묻은 후 약 1년이 지나 숙성되면 먹는다고 했다.

정 사장의 식당에서 손님들이 주로 찾는 사찰음식은 발우비빔밥. 생채청국장, 들깨순두부, 두부채국수 등이다. 발우비빔밥은 조미료를 쓰지 않은 시래기와 무나물, 다진 콩잎, 김부각, 숙주나물 등을 참기름이 아닌 들기름으로 볶아 발우에 담아 내놓는다. 두부채국수는 다시마, 표고버섯, 바지락, 새우 등과 함께 배추를 넣고 우려낸 육수에 국수처럼 얇게 채를 낸 두부를 얹어 먹는 것이다. 이 집에서 손님들에게 내놓는 사찰음식의 레시피는 크게 어렵지 않고 간단하다. 맛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자연에서 최상의 식재료를 구하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몸수고를 아끼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요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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