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한 바람이 불면서 온몸의 감각이 살아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난다. 때마침 백화점'쇼핑몰은 물론 소규모 식당이나 카페에 이르기까지 가을의 감성을 자극하는 체험 마케팅으로 분주하다. 별스럽거나 요란하지는 않다. 그러나 고객의 마음속에 잔잔하게 스며든다. 팍팍해진 살림살이지만 어느새 마음을 흠뻑 적셔 '지름신'을 강림하게 한다.
◆체험 쇼핑
가을만 되면 우수에 가득 찬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난다. 처녀 시절부터 가을을 잘 타 별명이 '추녀'(秋女)였던 주부 김희진(36) 씨. 마음이 울적해지고 허해질 때면 기분 전환을 위해 백화점을 찾는다. 쇼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가을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싶어서다. 올 들어서는 주로 동아쇼핑에 있는 '모던하우스'에 들른다. 이번 가을 새집을 장만하려고 했지만 치솟은 아파트 값 때문에 잠시 미뤄야 했던 김 씨는 이곳에서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유럽형 생활용품 매장인 모던하우스. 2011년 문을 연 이곳은 침장, 주방, 데코, 가전, 가구, 키즈리빙 등 분야별로 구성되어 있다. 무려 1만4천여 가지의 다양한 생활용품을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 씨는 "여기는 유럽형 아파트 실내와 똑같이 꾸며져 있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보고 책상 앞에 앉아볼 수도 있다. 향긋한 내음이 나는 향초 등도 전시돼 있어 오감이 즐겁다"고 했다.
쇼핑 중 시식코너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고 시식을 통해 상품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기 때문, 제품의 설명부터 요리법, 가격 대비 제품의 질 등을 꼼꼼히 따져 볼 수 있다.
김 씨와 같은 소비자들이 늘면서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이 체험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은 식품 코너는 물론 화장품, 전자제품 코너 등에 체험 마케팅을 적용했다. 식품 코너 한 직원은 "체험을 할 때와 안 할 때 매출액이 많게는 10배 이상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화장품 매장에서도 직원이 고객들에게 향수를 뿌려 주거나 화장품 정품을 개봉해 보여주는 체험 마케팅을 하고 있다.
소비가 위축될수록 고객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인식이 제조'유통업체에 확산됨에 따라 체험 마케팅이 식품'화장품에 이어 커피숍, 가구'침구류 매장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황보성 동아백화점 홍보팀장은 "체험 마케팅 비용이 만만찮지만 그만큼 판매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백화점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라고 했다.
◆커피숍'음식점'영화관도 동참
체험 마케팅은 제조'유통업체나 큰 기업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은행'커피숍'음식점'영화관 등도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체험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다. 23일 찾은 대구 수성구 수성동아백화점 뒤편에 있는 카페 '커피하라'. 입구부터 그윽한 커피 향에 가을의 정취가 실려온다. 내부는 물론 외부까지 가을 분위기이다. 호박잎이 무슨 소원을 빌듯 가게를 감싸고 있고 들국화, 코스모스부터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손님들을 맞는다. 빨갛게 익은 석류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다.
이 카페가 사용하고 있는 전략은 체험 마케팅. 요즘 같은 가을이면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실내를 꾸민다. 주인 전종규 씨는 "같은 커피라도 분위기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이다. 도심 속에서 커피 한잔을 먹으며 사시사철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전 씨는 인근 가게 주인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맛보게 한다. "나만의 노하우로 커피를 만드는데 사람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어요. 백화점 시식 코너처럼 고객이 커피를 직접 맛보게 하지 않고는 그 맛을 알릴 수 없다는 생각에 무료 시음을 시작했습니다. 시음 행사에 대한 반응이 좋고 매출도 늘었습니다. 하도 손님들이 몰려들다 보니 인근 커피숍 주인들의 눈치가 보입니다." 전 씨는 이달부터 폐점시간을 자정에서 오후 8시로 앞당겼다. 주변의 커피숍 주인들을 위한 작은 배려이다.
문턱이 높기로 유명한 은행도 변하고 있다. 지난여름에 리모델링한 대구은행 본점 영업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낮은 창구로 편안한 분위기다. 여름 내내 넓은 공간에 편안한 소파가 마련된 DGB 라운지를 운영했다. 지금은 혈압계 및 체성분 분석기 등이 비치된 DGB 헬스존, 가상금융 거래 등을 할 수 있는 스마트존 등 고객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셉트의 쉼터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백상헌 차장은 "고객들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몸소 체험하면서 은행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동성로에 있는 롯데시네마 영화관.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을 위해 편안한 진동소파가 마련돼 있다. 현풍휴게소도 체험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피곤한 운전자들을 위한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그야말로 오감 만족이다. 몇 년 전 휴게소 실내 디자인을 대폭 개편해 눈이 즐겁고 클래식 음악방송을 들을 수 있어 귀 또한 흥겹다. 음식 역시 즉석요리 중심이라 입도 반가워한다.
◆느낌 아니까~
체험 마케팅도 진화하고 있다. 그동안 주로 시각과 청각'후각에만 의존했다면 최근에는 촉각까지 동원한 마케팅이 선보이고 있다. 촉각은 모든 동물의 감각 가운데 가장 먼저 발달한다. 그래서 촉각은 '감각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업체가 시각이나 청각적 자극만 활용한 마케팅에 주력했다. 상대적으로 촉각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가졌다. 시각'청각'후각에 비해 구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촉각을 이용한 마케팅이 유행이다. LG전자의 휘센 에어컨 광고는 촉각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에어컨 광고는 오직 시각에 의지해서만 보여줬지만 이 광고는 만년설에 둘러싸인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마치 에어컨의 냉기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소비자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다.
음식 프렌차이즈 업체인 '바뷔취'의 이정희 대표는 "같은 사람이라도 따뜻한 음식을 들고 있을 때와 차가운 음식을 들고 있을 때 느낌이 달라진다. 되도록 손님들이 따뜻한 음식을 손에 쥐고 맛볼 수 있도록 음식을 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고 했다.
촉각 마케팅의 미래는 밝다. 특히 고령화 추세에 따라 촉각을 활용한 마케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마케팅 컨설턴트 정석희 씨는 "노인은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으로 '터치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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