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쟁이 문서'라는 말이 있다. 서두가 없이 뒤죽박죽 기분 내키는 대로 일 처리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이다. 흔하디 흔한 채소라고는 하지만 우리 식생활에서 배추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말에서라도 이리 하찮은 대접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김치의 출발이자 완성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배추의 중요도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배추의 문제가 아니라 배추를 다루는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올해 배춧값이 심상찮다. 태풍 피해가 없는 등 기상 여건이 좋아 생산량이 최대 19만t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김장 배춧값 폭락 조짐이 보이자 정부가 최대 11만t을 폐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장 채소 수급 안정책으로 배추뿐 아니라 평년에 비해 가격이 크게 떨어진 고추와 마늘도 시장 물량 조절을 통해 가격 안정세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가을배추 생산량은 평년보다 6∼11%, 고추는 5%, 마늘은 27% 각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0년과 작년의 가을배추는 말 그대로 '금추'였다. 배춧값이 1포기 1만 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넘사벽이었다. 소비자들은 다락같이 오른 가격 때문에 김치 담그기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배추 대란'을 겪었다. 우리 국민의 배추 체감도가 매년 이리 불안정하고 기복이 심한 것은 몇 해 걸러 이런 파동이 되풀이되고 있어서다.
현행 배추 가격 안정책은 시장 원리대로 공급 조절과 수요 확대가 기본 방향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매년 농가와 소비자만 번갈아 골탕 먹는 구조다. 만약 정부가 획기적인 저장'비축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배추 출하와 구매 시점에서 포기당 소액의 기금을 붙여 조성한다면 배춧값 널뛰기를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격 등락에 따라 농가는 기금을 받고 소비자는 안정된 가격에 배추를 살 수 있는 안전판을 만들자는 소리다.
우리 김치와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오르는 마당이다. 나눔 정신의 실천과 연대감'정체성을 증대시킨 이유로 김치가 인류의 소중한 유산으로 기록되는 상황인데도 김치의 기본 재료인 배추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수급 조절한다고 애꿎은 배추만 갈아엎을 일이 아닌 것이다. 등재 보류된 '궁중 요리'를 제치고 '김치'가 당당히 인류무형유산으로 선택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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