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재선충병으로부터 소나무를 지키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소나무이다. 소나무만큼 우리 민족에게 다양하고도 폭넓게 이용된 나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문명과 문화는 소나무의 이용 정도에 비례해서 발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나무의 쓰임새를 보면 기둥 서까래 등 건축재, 옷장 책장 등 가구재, 주걱 목기 등 식생활 용구뿐만 아니라 식품이나 약품까지 너무나 다양해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다.

소나무의 백피(白皮), 즉 속껍질은 식량으로 한몫을 했다. 찧어서 가루를 만들어 송기떡을 빚기도 했고, 술을 만들거나, 솔잎은 송편을 만드는 데 쓰기도 했다. 잎 말린 송엽은 각기병 치료제 강장제 소화제로, 꽃가루 말린 송화는 이질 치료제, 송진 말린 송지는 지혈제로 쓰는 등 그 가치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또 소나무는 그림의 소재로도 쓰였는데, 신라 진흥왕 때 솔거의 황룡사 '노송도', 김홍도의 '송하취생도', 김정희의 '세한도'가 대표적이다.

소나무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래 사는 나무로 장수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래서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삼고 있다. 거대하게 자란 노목은 장엄한 모습을 보이고, 차가운 눈 서리를 이겨 항상 푸른 기상은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한다.

애국가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하고 노래하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강인한 의지를 말하는 것으로,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나무로서 온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소나무는 우리 생활에 물리적'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우리 민족은 소나무 문화권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걸려 고사하고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재선충병은 일단 감염되면 100% 말라 죽기 때문에 일명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기도 한다. 아직까지 재선충 자체를 박멸하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매개충의 확산 경로 차단을 위한 약제 살포, 재선충과 매개충을 동시에 제거하기 위한 고사목 벌채 및 훈증 등이 방제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울한 것은 소나무가 아열대화가 되면 제일 먼저 사라진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남쪽지방에서는 볼 수 없고, 북쪽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재 재선충병은 경북을 비롯해 제주, 경기, 전남 등 5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생해 올해 56만 그루가 말라 죽었다고 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 같은 재선충병 확산은 기후의 영향으로 매개충의 활동 시기가 길어지고 이상 고온과 가뭄 등 재선충병 증식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올해 남부지방(경남'북, 제주)의 6∼8월 평균기온은 25.3∼26.3℃로, 지난 3년 평균보다 0.6∼1.6도 높았으며, 강우 일수는 2.3∼4일로 0.7∼3.5일 적었다고 한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고 할지라도 인재로 인해 재선충병이 확산된 점에 있다. 산림청의 방제 지침을 지방자체단체들이 어겨 화를 키웠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산림청은 고사목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GPS로 고사목의 좌표를 얻어 도면화하라는 지침을 내렸으나, 지자체가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재선충이 발생한 55개 지자체 중 재선충 방제 전담인력을 가진 곳은 거제시 단 한 곳뿐이었다니 할 말이 없다.

지자체장들이 표가 되지 않는 재선충 방제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온 산천이 재선충병으로 소나무가 죽든 말든 나와 상관없다는 오만한 행동에 대해 내년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표로써 심판해야 정신 차릴 것이다.

식목일을 정하고, 아무리 산에 나무를 심더라도 가꾸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심는 것 못지않게 가꾸고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나무 심는 날만 정할 것이 아니라 나무 가꾸는 날도 정해서 우리의 소중한 소나무를 재선충병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허태조/(사)전국산림보호협회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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