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세계은행, EU, OECD, 한국

지역 문제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띤 채 경제학계의 변방에 머물러 왔다. 지역 문제가 주류 경제학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경제지리와 교역'(1991)이라는 저술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2008년 이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 문제의 복잡성은 자원배분에 있어 인간과 시간의 문제만 다루는 일반 영역과 달리 공간이라는 하나의 차원이 추가되는 데 기인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구성하는 3요소로 인간, 공간, 시간을 들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을 현재보다 잘살게 하고, 인간끼리 공평한 소득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지향점이다. 여기에 공간 차원이 추가되면 지역별 성장 극대화와 지역 간 불균등 완화 문제가 가중되어 정책 방향을 세우기 어렵다. 크루그먼식의 신경제지리학도 경제활동의 공간적 집중이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으나,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바람직하며 정책은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결국 최종 판단은 정책당국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정책의 근본적 이슈에 대해 최근 수년간 주목할 만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논전은 세계경제를 대표하는 세 기관 즉 세계은행과 EU, OECD가 주도하고 양 진영의 학자들이 가세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공간 또는 지역을 명시적으로 고려한 정책이 과연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2009년 펴낸 세계개발보고서(WDR'2009)에서 공간적으로 무차별적인 정책을 강조한 반면 EU와 OECD는 지역정책에 있어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과 지역특성에 맞는 차별적 정책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입장은 시장경제원리에 의한 도시 중심의 집적이 지역 및 국가 경제성장의 요건이므로 지역 간 차등화'차별화 정책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에 몇 개의 도시가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세계은행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WDR 2009'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EU의 바르카(Barca'2009) 보고서다. 이 보고서의 기본적인 관점은 지역발전전략 추진에 있어서 소수의 경제적, 사회적 핵심 목표들을 설정해야 하며 그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장소 기반 정책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지역별 선호와 잠재력을 반영해 지역별로 차별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 보고서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지역혁신이다. OECD는 EU와 같은 입장에서 지역의 내재적 자산과 자원을 가동시키는 것을 강조한다. 종전의 제로 섬 성격의 지역 간 재정 이전을 넘어서서 낙후지역의 생산 잠재력 구현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해결하고 기업의 혁신을 장려함으로써 포지티브 섬 게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도권론자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소국을 몇 개 지역으로 나누어 차별적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암묵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토 면적이 좁다고 하여 소국이라고 하는 것은 단견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구 및 경제 규모다. 이른바 강소국이라고 하여 우리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나라들은 인구가 400만 명에서 1천만 명에 불과한 나라들이다.

충청권, 호남권, 대경권의 인구는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싱가포르와 비슷하고, 동남권은 스웨덴, 스위스 등과 비슷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전체 즉 국가 차원에서가 아니라 각 광역경제권 차원에서 지역 특성을 살려 이들 강소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며 진취적이다.

이제 5+2 광역경제권 폐지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 같다. 이것은 광역경제권의 설정 자체가 비합리적이었다기보다는 권역 내 시'도 간의 나눠먹기식 행정체계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중앙 주도의 지역 간 협력체계 구축이 현재의 지방자치제도하에서는 먹혀들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광역경제권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해온 필자로서는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독자적으로 발전을 추구하되 기업과 시민의 입장에 서서 자율적으로 연계'협력을 하도록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장재홍/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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