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다. 무색무취한 인물로 평가받았던 그는 3년 9개월간 장수 총리로 재직하면서 묵묵히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집행했고 특히 각종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치사를 대신 읽어 '대독 총리'로 불렸다. 국무총리가 왕조시대의 영의정에 빗대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통하는 자리임에도 그 자리를 영광으로 여기는 데에만 만족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중심제 아래에서 국무총리의 위상과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대통령이 총리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운신의 폭은 달라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8년간 장기 집권하는 동안 최두선, 김종필, 정일권, 백두진, 최규하 등 6명의 총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강력한 대통령 밑에서 '대독 총리'의 역할에 머물렀다. 이 시기의 총리들은 행정부의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아 '의전 총리'로도 불렸고 때로는 대통령을 대신해 여론의 방패막이가 되는 '방탄 총리'의 역할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김영삼정부 시절의 이회창 총리는 '대쪽 총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려 노력했고 이 때문에 대통령과의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김대중정부의 김종필 총리는 정권을 공동으로 창출했기에 위상이 남달랐고 노무현 정권 때는 총리와 권한을 나누고 힘을 실어줘 이해찬 총리는 '실세 총리'로 통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의 정운찬 총리는 나름대로 역할을 했고 김황식 총리는 애초에 '대독 총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이를 불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홍원 총리가 28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것을 두고 '대독 총리'가 된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많다. 유럽 순방 일정을 마친 지 이틀 만에 예정에 없던 것이어서 청와대의 뜻에만 따른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야 할 상황에서 총리에게 짐을 떠넘겨 대통령의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책임 총리제' 공약 역시 물 건너갔다는 지적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원론적 수준의 다짐과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는 담화 내용도 꼬인 정국을 풀기에는 안이한 인식으로 보인다. 아버지 대통령 때 입길에 오르내렸던 '대독 총리'가 딸 대통령 때 다시 거론되면서 국정 운영 방식이 크게 후퇴한 듯해 답답할 따름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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