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저녁식사 모임에 갔더니 '불완전 판매'라는 말이 화제에 올랐다. 동양그룹의 사기성 회사채'기업어음(CP) 판매 사태로 널리 알려져 일반인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용어다. 불완전 판매는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금융거래나 투자 시 필요한 정보나 상품의 특성을 충분히 제공'설명하지 않거나 왜곡 또는 과장해 파는 행위를 이른다. 쉽게 말해 어떤 상품인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은 채 그냥 사두면 득 되는 물건이라며 꼬드겨 파는 일종의 '깜깜이' 판매다.
그동안 LIG 사태 등 불완전 판매가 여러 차례 사회문제가 됐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은 이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부조리와 배반적인 시장 윤리다. 불완전 판매라고 그럴듯하게 이름은 갖다 붙였지만 심하게 말하자면 탐욕과 사익이 버무려진 기만 상술이자 사기다. 불법 금융 다단계 사기처럼 전혀 가치도 없는 쓰레기를 괜찮은 상품으로 속여서 파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수법은 다르지만 결말은 똑같다.
그런데 동양 사태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감독 당국에까지 미치자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어저께 "동양그룹 사태를 교훈 삼아 불완전 판매 관행이나 금융 소비자 보호 장치 등을 점검해 시장 규율을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일부 부도덕한 기업이 고리를 미끼로 투자자를 그러모은 뒤 부도를 내 채권'어음이 휴짓조각이 되는 일이 관행이라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런 관행은 자본시장의 교란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장의 정의와 신뢰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최근 JP모건 은행이 모기지담보증권(MBS) 등을 페니메이와 프래디맥 등 국책 모기지 업체에 불법 판매해 미국 정부와 투자자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 혐의로 130억 달러의 막대한 배상금을 내게 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미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시장 행위로 인해 기업과 경영자에 대한 불신을 넘어 사회적 비용 부담이 누적되고 결국 시장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이런 관행은 비단 금융자본시장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정치는 대표적인 불완전 판매다. 대선이나 총선 때 정당과 후보자들이 내놓는 장밋빛 공약은 불완전 판매의 전형이다. 당장 표를 얻을 욕심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속인다. 정당은 정책의 완성도나 신뢰성, 여건, 사회적 부담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공약이라는 표를 판다. 만일 공약을 지킬 책임감도, 그럴 능력도 없는데 권력의 무한 복제만을 염두에 두고 표를 긁어모았다면 그런 정치는 막장 정치다.
당장 현 정부만 봐도 정치의 불완전 판매가 어떤 문제점을 낳고 사회 혼란을 부르고 있는지 잘 증명하고 있다.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창조경제, 검찰 독립, 국민 대통합 등 포장만 그럴싸한 공약을 놓고 10개월 넘게 갑론을박하고 있다. 상당수 국민은 '공약 사기'라고 다그치고 정부는 배를 내밀며 불완전 판매를 입증하라고 맞받아친다. 공약이라는 정치 구호와 우리의 후진적 정치 구조가 남긴 심각한 부작용이 수십 년째 계속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변검'이라는 중국 전통 기예가 있다. 배우의 얼굴 분장이 순식간에 바뀌며 극의 분위기나 극 중 상황을 전달하는 연극 기법이다. 중국의 사천성 지방에서 널리 유행한 '천극'(川劇)에서 유래한 변검은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의 민간에서 처음 시작됐다. 일설에 따르면 범죄 수배자들이 관병을 따돌리기 위해 변검을 활용했는데 얼굴 모양을 섬뜩하게 바꿔 놀라게 한 뒤 달아났다고 한다. 이런 분장술이 무대로 옮겨가 수백 년간 그 양식과 표현 수법이 발전하면서 독특한 공연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변검처럼 기업과 정부가 때에 따라 얼굴색이 변하고 표정이 바뀐다면 시장과 정부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기업이 부도 직전까지 소비자를 속여 물건을 팔고, 여야가 혈세로 세비 줬더니 하는 꼴이 복장 터지는 일만 벌인다면 시장과 정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국민은 심각한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는 "2008년 리먼 쇼크야말로 '우리 시대가 시장 지상주의의 막판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지적했다. 우리에게 동양 사태가 리먼 쇼크에 버금가는 시장 지상주의 폐해의 단적인 사례라면 우리 정당 정치의 막판도 그리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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