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쓴 한시] 看花吟(간화음)/ 이숭인

산 기운은 저절로 황혼에 물이 드네

대체로 남자는 남아(男兒)답게, 여자들은 정숙한 여인답게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라고 기풍당당한 시만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성격에 따라서, 시풍에 따라서, 주위 친지들의 분위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내용의 섬세함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서는 '고려 삼은(三隱)'으로 일컬어지는 한 분의 시를 주 텍스트로 삼아보았다. 그의 시풍을 두고 세인들은 여성스럽다고 말하는데 섬세한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붉은 단풍 시골길 환하게 밝혀주고

맑은 샘물 돌부리를 양치질로 닦아내니

오가는 거마는 없어도 황혼에 물든 산기운.

赤葉明村逕 淸泉漱石根

적엽명촌경 청천수석근

地偏車馬少 山氣自黃昏

지편거마소 산기자황혼

【한자와 어구】

赤葉: 붉은 잎, 곧 붉은 단풍/ 明: 밝히다/ 村逕: 시골의 아담한 오솔길/ 淸泉: 맑은 물/ 漱: 양치질하다/ 石根: 돌부리/ 地偏: 외진 곳, 땅의 저쪽 끝/ 車馬: 수레와 말/ 少: 적다, 곧 인적이 드물다/ 山氣: 산 기운/ 自: 저절로/ 黃昏: 황혼, 해질녘

'산 기운은 저절로 황혼에 물이 드네'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9~1392)으로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 삼은(三隱)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문사로서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고, 문재로서 고려의 국익을 위해 기여했으며, 시는 후대에 극찬을 받았다.

그의 시는 정연하고 고아(高雅)하다는 평을 받는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붉은 단풍 시골길을 밝혀주고/ 맑은 샘물 돌부리를 양치질하네/ 외진 곳이라 오가는 거마는 없고/ 산 기운은 절로 황혼에 물드네'라고 번역된다.

단풍이 들기 전 서둘러 밀린 일을 정리하고 자연이 한 해 동안 준비해 온 꿈속 같은 가을 풍경화 속에 잠시 들어가 보게 된다. 이 시는 삶의 어려운 국면에서도 위축되지 말고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지니라는 언외(言外)의 가르침을 준다. '맑은 샘물은 돌부리를 양치질한다'는 표현이나, '산 기운은 황혼에 물들고 있다'는 표현은 절묘한 가구(佳句)다.

앞에 소개한 정도전의 시 '訪金居士野居'(방김거사야거)와 비교하면 가을 경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그 경치를 완상(玩賞)하고 있는 시인의 한적(閑適)과 고적(孤寂)을 전달해준다는 점에서는 두 시의 의경(意境)이 통한다. 정도전의 시가 스케일이 크고 활달하다면, 이숭인의 시는 섬세하고 정교한 맛이 나서 구체적 미감은 차이가 난다. 정도전이 '사방산이 비었다'(四山空)거나 '온 땅 가득 붉다'(滿地紅)라고 한 것과 이숭인이 '돌부리를 양치질하듯 씻어준다'(漱石根)라고 한 표현에서 보게 된다.

이숭인은 고려 말기의 학자로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 숙옹부승(肅雍府丞)이 되고 곧 장흥고사(長興庫使) 겸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으며 명나라 과거시험에 응시할 문사(文士)를 뽑을 때 수석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25세에 미달하여 보내지 않았다. 우왕 때 김구용'정도전 등과 함께 북원(北元)의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주청하다가 한때 유배되기도 했다.

그후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어 정몽주와 함께 실록(實錄)을 편수하고 동지사사(同知司事)에 전임되었으나 친명(親明)'친원(親元) 양쪽의 모함을 받으며 여러 옥사(獄事)를 겪었다. 조선이 개국할 때 정도전의 원한을 사 그의 심복 황거정(黃巨正)에게 살해되었다.

그는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목은 이색은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칭찬했고, 명나라 태조(太祖)도 일찍이 그가 찬한 표문(表文)을 보고 "표의 문사가 참으로 절실하다"고 평가했다. 저서 '도은집'(陶隱集) 서문에는 '관광집'(觀光集)''봉사록'(奉使錄)''도은재음고'(陶隱齋吟藁) 등을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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