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동안 연예계에서 흥망성쇠를 다 겪은 이가 이 세계의 뒷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고 하니 믿음직스럽긴 하다. 배우 엄태웅과 김민준, 소이현도 감독에 도전한 배우 박중훈(47)이 메가폰을 잡는다고 하니 "박중훈 선배를 믿고 영화 '톱스타'에 합류했다"고 여러 인터뷰나 방송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감독 박중훈도 '톱스타'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일단 카메라 앞에 서다가 뒤에 있는 게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또 다른 힘들었던 점이 있다. 바로 배우들 캐스팅 문제였다.
극 중 톱스타 매니저 출신으로 유명배우가 되는 태식 역할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는 박중훈은 "나이가 좀 어린 친구들에게 수차례 출연 거절을 당했다. 10번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여러 명의 배우가 출연을 고사했다"고 회상했다.
"매번 의뢰를 받고 수락하거나 거절하다가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었죠. 제작, 감독을 하면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니 각오를 했는데도, 막상 그런 현실이 닥치니 어렵고 힘들었어요. 재미있게 말하자면 굴욕이지만, 당황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네요. 한 번도 안 써본 근육을 썼을 때 오는 근육통이랄까요?"(웃음)
나이 어린 친구들을 섭외하지 못하자 캐릭터의 연령대를 올렸다. 어수룩하면서 무언가 결핍한 느낌도 나야 했고, 후반부에서는 광폭한 모습이 있는 역할이니 초반에는 선한 느낌이 났으면 했다. 그때 박 감독 머리에 떠오른 배우가 엄태웅이었다.
엄태웅은 박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물론 김민준과 소이현의 캐스팅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김민준이 은퇴 발언을 하는 바람에 고사를 했는데 읍소해서 마음을 돌렸다. 두 남자 배우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여자 주인공 소이현의 마음을 잡기도 쉽지는 않았다.
"28년 동안 행운이 넘칠 정도로 배우를 했었죠. 그런데 배우의 경험은 영화감독으로서는 양날의 칼 같더라고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선배가 연출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겠죠."
'톱스타'는 화려해 보이지만 성공과 배신, 꿈과 욕망이 뒤섞인 화려한 톱스타, 그들의 감춰진 이야기를 그렸다. 톱스타(김민준)와 이 톱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매니저 출신 배우(엄태웅), 그리고 제작자(소이현)가 중심이다.
박중훈은 "가장 잘 아는, 또 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30대까지만 해도 영화감독을 향한 꿈은 0%였다는 박중훈. 연기자로서 성취만을 위해 달려오다 보니 남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걸 알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남들을 배려하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걸 영화로 풀어냈으면 하는 바람이 지금에야 빛을 보게 됐다. 영화 '체포왕'을 끝내고 '톱스타'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니, 2011년 3월 정도가 제대로 된 연출 도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박중훈은 그렇다고 이번 영화에 자신의 과거를 전사적으로 끼워 넣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 살을 붙이기도 하고, 과장했다. 배우 끼워 팔기, 음주운전을 한 배우를 대신해 자수한 매니저 이야기, 스캔들을 덮는 또 다른 스캔들, 미성년자 성매매 등이 꽤 충격적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인터넷상에서 흘러넘치고 빤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하니 박중훈은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SNS가 엄청나게 발달했고,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도 난무하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봤을 때는 안 밝혀진 형태의 사건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연예인의 자살 문제도 이제는 어떻게 보면 흔한 일이 됐잖아요? 자살은 큰 문제인데 말이죠. 연예계의 일은 그 일이 주는 자극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둔감해진 것 같아요. 충분히 세고 자극적인데 그걸 그렇게 안 받아들이는 거예요. 정치나 스포츠도 연예계보다 정도가 이렇게 심한 것 같지는 않아요."
박중훈이 과거를 돌아보는 의미로 이 영화를 만든 것 같기도 한데, 그건 잘못 짚었다고 했다. 그런 의도는 아니란다. "자연스럽게 지나간 세월이 반추 되는 것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중훈은 다음 연출 계획을 묻는 말에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했다. "상업 영화를 내놓았는데 흥행이 되어야지만 투자를 잘 받아 다음 작품 준비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박중훈은 "독립영화로는 관객을 찾을 생각은 없다"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흥행이 잘 안 되어도 연출에 뜻이 있다면 독립영화로 계속 영화 감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다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하고 싶어 하잖아요. 독립영화보다는 상업영화가 좋죠. 또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연기하는 배우가 극단에서 혼자 모노드라마를 하지 충무로(영화 현장)에 굳이 나올 필요는 뭘까요?"
박중훈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기대했다.
"'형편없다. 함량 미달의 영화다'라는 평가를 받지 않은 것이 괜찮은 영화가 되는 조건이겠죠? 어떤 영화들이 만듦새의 조롱을 받으면 그건 명백한 실패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평가가 없다는 게 최소한의 조건이고, 기왕이면 좋은 평가를 많이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흥행하는 영화가 작품성도 동반한다고 생각해요. '7번방의 선물'을 향해 '이게 1천만 명이 볼 영화냐?'고 비아냥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1천만 명의 관객을 우롱하는 것 같네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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