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성 스포츠에 뛰어든 여성들] 경산 아줌마 럭비단

단체운동 재미 푹 빠져…71세 왕언니도 깔깔깔

땀에 젖은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공을 따라 분주하게 몸을 움직인다. 자로 잰 듯한 패스와 거친 태클, '여기로 공 넘겨'라며 서로에게 지시하는 고함…. 운동장에선 남성경기 못지않은 활기가 넘친다. 그동안 국내에서 인기종목으로 자리해 온 대표적 구기종목 야구, 축구, 농구, 그리고 럭비. 하지만 여성들의 스포츠 문화는 남성 스포츠에 밀려 그늘에 가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많은 여성들이 이들 구기종목에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축구팀과 야구팀, 그리고 럭비팀도 속속 창단되고 있다. 열정적인 플레이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여성 스포츠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을, 더 나아가 남성들의 인식까지 바꿔가고 있는 당찬 여성 스포츠 마니아들을 만나봤다.

◆'옹골찬 노사이드' 팀원 40여 명

25일 저녁 경산고등학교 실내체육관.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아줌마 40여 명이 길쭉한 럭비공을 갖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놀고 있다.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 패스를 하고 그 공을 뺏기 위해 분지런히 움직인다. 마치 술래잡기 놀이 같다. 한편에선 뛰어가면서 패스 연습을 하고 있다. 얼굴에 땀이 배어 나온다. 힘들지만 얼굴 표정은 밝다. 혹여 실수라도 할라치면 웃음보를 터트린다.

장말선(47) 씨는 "재미있다. 특히 럭비는 생소하기도 하고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잘 안 쓰는 근육도 써 운동 효과도 좋다"고 했다. 아이들도 '엄마라면 할 수 있다'고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고 했다. "'아줌마가 무슨 럭비?'라고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아줌마니까 가능하다"고 했다. 팀에서 가장 어린 정민교(34) 씨는 "맘대로 안 되지만 재미있다. 팀워크가 중요시되는 스포츠라 서로 도와가면서 하는 것이 좋다"며 "에너지가 충만해 집에 돌아가면 남편도 좋아한다"고 했다.

15일 창단한 경산지역 여성 럭비팀 '옹골찬 노사이드' 선수들 반응이다. '노사이드'(No Side)란 럭비 경기가 종료된 상황을 말한다. 경기가 끝나면 승패를 떠나 서로 친구가 된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하고, 서로 격려하는 노사이드의 의미를 실천하겠다는 의미로 지었다.'옹골찬 노사이드'는 기혼여성 50명으로 구성됐다. 30∼50대가 대부분이고, 71세의 어르신도 있다. 입단하려는 여성들이 너무 많아 선착순으로 선발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대기자만 수십 명이 될 정도다. 옹골찬 노사이드 회원들은 경산중'고 럭비부 코치와 경산시 생활체육회 강사로부터 목요일 오후 6시 경산고 실내체육관에서 럭비를 배우고 있다.

◆회원 가입 경쟁률 높아…대기자 수십 명

럭비는 태클이나 스크럼을 짜 상대 공격을 막는 것 때문에 거칠다. 하지만 옹골찬 노사이드 럭비단은 상대의 등에 태그(tag)를 터치하면 상대 공격을 저지하게 되는 경기 방식을 택해 부상의 위험과 체력적인 부담을 줄였다.

옹골찬 노사이드 회원들은 '럭비의 고장, 경산'에 사는 여성답게 럭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초대 회장을 맡은 허순옥(49·경산시의원) 씨는 "창단 회원을 모집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진땀을 흘렸다"며 "럭비에 대한 여성들의 열기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전했다.

허 회장은 "럭비가 거칠고 힘든 운동이지만 운동량이 많고, 여럿이 같이 해 재미있으며 특히 함께 뛰고 웃다 보면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허 회장은 후원자들도 생겨나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했다.

맏언니 이경자(71) 씨는 경산시 남천면 구일리에서 40, 50분 걸어서 훈련에 참여한다. "힘들지 않다. 아들이 럭비 선수로 활동해 럭비에 대한 지식도 젊은 여성 못지않다"며 "땀을 흘리고 나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옹골찬 노사이드팀은 실력을 갈고 닦아 내년 봄 전국춘계럭비리그전 오프닝 경기에 출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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