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직진 대신 빙글빙글 교통체증 술술 풀리네

도심 '회전교차로' 왜 자꾸 늘어날까

끼이익~ 쾅.' 회사원 최성호(44) 씨는 운전 중 교차로에만 이르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얼마 전 도심 교차로에서 추돌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차량이 그의 차를 들이받았다. 최 씨는 이후부터 노란색 신호가 들어오면 재빨리 교차로를 통과한다. 며칠 전에는 신호 위반으로 교통단속에 걸려 범칙금을 물기도 했지만 노란색 신호만 보면 가속페달을 밟는 것이 운전습관이 되어 버렸다. "과속해 교차로를 통과하느라 교통단속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를 낼 뻔한 아찔한 순간도 많지만 추돌사고를 피하려니 어쩔 수 없어요."

최 씨는 아직도 '교차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다행히 최 씨와 같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회전교차로가 대구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회전교차로는 교차로 내부 중앙에 원형 교통섬을 두고 통과차량이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도록 설계된 교차로이다. 이는 이전의 로터리와 달리 통행우선권을 회전차량에 먼저 부여하여 로터리에 비해 효율성과 안전성을 향상시킨 통행 방법이다.

◆돌았더니 더 빠르고 안전하네

지난달 23일 찾은 북구 동천동 동천워터피아 앞 교차로. 퇴근시간인데도 차량들이 물 흐르듯 돌고 돈다. 이곳은 몇 년 전만 해도 칠곡3지구에서는 악명 높았던 교통혼잡지역이었다. 교통사고가 발생해 인명 피해도 잇따랐다. 매년 10여 건(접촉사고 제외)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2010년 회전교차로로 바꾼 뒤 매년 1건의 접촉사고만 발생해 '사고 교차로'란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신호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 교차로를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30%가량 줄었다.

인근에 있는 삼성디지털프라자 앞 네거리도 마찬가지. 대형마트와 병원들이 인접한 이곳 역시 출퇴근 시간이면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몇 년 전 회전교차로가 생긴 뒤 교통사고와 교통혼잡이 사라졌다. 태전동에 살고 있는 강현구(58) 씨는 "병원을 찾았다가 30분 이상 지체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팔달교를 넘어 시내 쪽 병원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회전교차로가 생긴 뒤 교통혼잡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했다. 회전교차로가 교통사고와 혼잡에 시달리는 도로에 구세주로 등장한 셈이다.

도심 곳곳에 회전교차로가 늘어난다. 대구시는 2010년부터 회전교차로 설치 시범 사업을 했다. 북구 동천동 동천워터피아 앞 네거리를 비롯해 지난해까지 교통사고 및 차량접속사고가 많은 8개 네거리에 회전교차로를 설치했다.

올 들어서는 회전교차로 4곳이 설치 중이다. 북구 성화여고 삼거리, 수성구 고산노변타운 삼거리와 매호초등학교 네거리, 달서구 이곡동 쇼핑월드 네거리 등이다. 이 중 성화여고 삼거리는 최근 준공돼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신호등을 없애고 대신 교차로 중앙에 교통섬을 만들었다. 차량이 교통섬을 따라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직진할 때처럼 과속하기 어려워 사고 위험도 그만큼 줄어든다. 옛 로터리와는 통행방식이 다르다. 회전교차로에서는 교차로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회전 차량에 양보하는 반면 로터리는 진입하는 차량이 우선 통행하도록 돼 있다.

대구시는 내년에 예산 15억원을 확보해 달성군과 동구에 회전교차로 6개 정도를 설치할 계획이다. 동구 율하동과 달성군 화원읍과 다사읍, 하빈면에 위치한 신호 교차로 등 모두 사고가 많은 곳들이다. 양정혼 대구시 회전교차로 담당자는 "지금까지 8곳을 설치해 운영한 결과,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들었다. 편도 3차로 이상 등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단점이지만 교차로의 특성을 고려해 대상지를 선정한 뒤 매년 서너 곳씩 회전교차로를 설치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사고발생'차량정체 해소

회전교차로 설치는 정부의 교통 운영체제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시작됐다. 노란색 신호일 때 네거리를 통과하려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등 과속과 불법 운전이 많았다. 차량이 없을 때도 신호를 기다리느라 시간과 연료를 낭비하게 된다. 사고발생과 차량정체를 없앨 수 있는 대안으로 회전교차로가 등장한 것이다.

일반 네거리에 비해 회전교차로에서 사고가 적게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일반 네거리의 경우 차량충돌 가능 지점이 분류(8곳'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교차(16곳'서로 다른 방향에서 부딪히는 곳)'합류(8곳'한 방향으로 합쳐지는 곳) 등 총 32곳에 이른다. 반면 회전교차로의 경우 교차지점이 한 곳도 발생하지 않고 분류와 합류 각각 4곳으로 충돌 가능 지점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표 참조)

교통 전문가는 "분류나 교차'합류 지점이 줄어들면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데다 차량 정지율 또한 80% 가까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고발생과 차량정체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기대효과도 상당하다. 대구시에 따르면 회전교차로로 개선할 경우 차량의 평균 통행속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교차로 1곳당 소통향상, 에너지 절감 등에서 3억6천만원의 편익이 발생한다.

안전행정부가 지난해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한 결과, 국내 전체 교차로 중 10%(5천662곳)를 회전교차로로 바꿀 경우 사고 감소, 시간'에너지 절약 등 비용 절감효과가 연간 2조43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지체 감소 효과가 1조6천700여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사고 감소 효과도 2천억원에 이른다. 교차로 설치비용이 5천96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봐도 투자금액 대비 4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셈이다. 대기오염도 감소된다. 연간 교차로당 대기오염비용이 1천5만원 선인데 비해 회전교차로를 운영할 경우 1천만원대로 떨어진다.

이 같은 효과가 입증되면서 영업방해 등의 이유로 회전교차로를 반대하던 주민들도 찬성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북구 동천동 동천워터피아 앞 네거리에 회전교차로를 설치할 당시만 해도 주변 상인들의 반발이 많았다. 그러나 회전교차로가 생겨난 후 상인과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넓은 교차로가 생기면서 주변 상가의 시야가 좋아졌고 불법주차가 없어지니 주민들의 상가 이용이 편리해졌기 때문이다. 잦은 교통사고와 상습정체로 유명했던 북구 성화여고 삼거리도 마찬가지. 회전교차로가 설치된 후 차량대기 시간과 사고가 줄어 주민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아름다운 교통섬

회전교차로 자체가 하나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중앙교통섬을 활용한 도시상징물 설치, 화단조성 등은 도시미관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영주시가 지난 7월 사업비 2억8천만원을 들여 설치한 봉현 회전교차로는 설치 몇 개월 만에 도심명물이 되었다. 양방향 3차로를 사이에 두고 원형 교통섬을 앉히고 그 안에 소나무와 산철쭉, 조경석, 초화류, 잔디 등을 심어 주변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했다. 도심 한복판에 정원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전 봉현 교차로는 교통법규 위반 및 과속 차량이 많아 교통사고가 빈번한 곳으로 꼽혔다. 국도 5호선에서 중앙고속도로 북영주IC로 진입하는 차량과 국지도 28호선인 순흥'부석 방면으로 주행하는 차량이 많아 교통 혼잡을 빚었기 때문이다.

또 기존 신호등을 철거해 시야를 확보했다. 이 신호등은 봉현면 오현리 봉현 교차로가 도로를 가로질러 버티고 서 있어 흉물스러웠다. 대구 동구 신천동 귀빈예식장 뒤편 네거리 역시 교통신호등과 이리저리 얽힌 전봇대의 전선으로 도시미관을 해쳤지만 회전교차로가 설치된 후 깔끔하게 변신했다. 북구 동천동 삼성디지털프라자 앞 네거리 역시 말끔해졌다. 오후만 되면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많았으나 회전교차로가 생긴 후 이런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엄종규 변호사는 "회전교차로에서는 일반 교차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고 위험이 덜하다. 문제는 끼어들기다. 회전교차로에선 먼저 들어와 회전하는 차량이 통행 우선권을 갖지만 얌체운전으로 끼어들 경우 이를 강제로 양보하게 할 방법이 없다. 특히 일반 교차로와 달리 도로교통법에는 회전교차로에서의 명확한 통행 규칙이 명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시계반대 방향으로 진입하는 방식도 익숙하지 않아 역방향으로 회전하는 차량도 적지 않다. 생소한데다 규정까지 분명치 않아 사고가 발생할 경우 분쟁의 소지가 많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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