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금융회사가 내놓은 조사 결과는 암울하다. 현재 24~58세 비은퇴자들이 지금처럼 노후를 위한 자금 준비를 지속할 경우, 필요한 자금의 40%밖에 모으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노후대책을 서두르라고 채근하고 있다.
은퇴한 지 5년이 지난 김모(62'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씨. 그는 최근 집과 차를 처분하고 작은 것으로 바꾸었다. 그동안 원금을 까먹는 생활을 해왔으나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어 오랫동안 살던 49평 집을 팔고 대구 부근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옮겼다. 중대형 자동차도 처분하고 소형 중고 자동차로 바꾸었다. 집을 대구와 가까운 경산으로 옮겼더니 1억5천만원의 현금이 생겼고 자동차를 줄여 500만원의 돈을 마련했다. 1억5천만원은 즉시연금에 넣어 매달 월지급식으로 받고, 아파트와 차를 줄였더니 관리비와 기름값이 한 달에 20만원 정도 절약됐다. 여기에 국민연금 100만원을 더해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아파트 부근에 텃밭을 일구어 식비를 절약할 생각이다. 건강한 채소도 먹고 시간도 보낼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했다. 그는 은퇴를 하고 보니 모으는 것 못지않게 절약하는 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생활비에 턱없이 부족한 노후 자금,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모든 은퇴자들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는 덧셈과 뺄셈의 방법을 알아봤다.
◆무엇을 줄일까
집의 크기를 줄이거나 집값이 싼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 여윳돈을 비교적 쉽게 마련할 수 있다. 앞서 본 김 씨처럼 집을 줄이면 목돈이 생기고 이를 활용해 부족한 은퇴 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사는 장소를 아예 도시에서 군 단위로 옮기는 것도 생활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군 단위에서 생활하면 생활비가 도시의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청도군 이서면에 살고 있는 박모(54) 씨는 집 앞 텃밭에서 나온 것들로 식비를 해결했더니 여름에는 한 달에 50만원으로 충분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 교육비 및 결혼자금을 줄이는 일이다. 목돈이 드는 부문이기 때문이다. 다른 생활비는 줄여도 자녀에 대한 지원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이다. 그래서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노후도 뒷전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부부가구의 재무준비지수가 35.1로 독신가구의 58.2에 비해 23.1포인트 낮았다. 부부가구 중에서도 자녀가 있는 가구는 자녀가 없는 가구에 비해 재무준비지수가 22.7포인트 낮을 만큼 자녀가 노후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교직에 있다 은퇴한 이모(72'대구시 동구 불로동) 씨는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은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퇴직당시 얼마나 오래 살겠느냐는 마음에 연금을 택하지 않고 일시불로 받았는데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목돈을 받아 두 자녀를 결혼시키고 나니 돈은 온데간데없고 생활만 어려워졌다"며 "연금을 받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했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 결혼 비용 부담 때문에 정작 본인의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무리해서 자식들 결혼시켜 놓고 나중에 돈이 없다고 손 내밀면 때는 이미 늦다. '누가 먹을 것도 남겨두지 않고 해달라고 했느냐'는 원망만 돌아올 뿐이다.
자녀와의 대화를 통해 교육비나 결혼준비자금을 줄이거나 직접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을 더할까
계속 일하는 것이 최고의 더하기법이다. 창업을 통해 스스로 고용하거나 월급을 적게 받더라도 계속 수입이 나오는 이른바 '서서히 은퇴하기' 등을 통해 일정 소득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60세 이후 재취업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이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부동산을 활용하는 것이다. 노후준비를 위해 따로 여윳돈을 만들기 어렵다면 부동산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은퇴를 앞둔 50대는 은퇴자금을 따로 마련할 여력은 없지만 20~40대보다 부동산자산 비중이 높기 때문에 다른 연령대보다 부동산을 활용하면 재무준비지수를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주택연금(역모기지) 등을 이용해 부동산자산을 노후자금으로 사용할 경우, 비은퇴자들의 평균 재무준비지수가 40.3에서 50.5로 10.2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경영연구소 관계자는 "부동산 보유율이 높고 노후준비가 부족한 50대 베이비부머의 경우, 부동산 자산을 노후자금으로 만들면 재무준비지수가 32.8에서 47.1로 크게 높아졌다"며 "부동산 자산 활용은 은퇴가 임박한 50대들에게 특히 유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 30대 가구는 길게 저축하고 적립식으로 투자할 것을 권했다. 60세 은퇴시점에서 3억원의 자금을 마련하려는 목표를 세웠다고 가정해보자. 40대부터 은퇴준비를 시작한다면 월 82만원을 저축해야 하지만 10년 일찍 30대부터 시작하면 절반 정도인 월 43만원이면 가능하다. 그리고 20대부터 시작하면 월 25만원으로 낮아진다. 이처럼 은퇴준비를 일찍 시작해서 오랫동안 저축하면 적은 금액으로 충분한 준비가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노후준비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노후준비에 있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비를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노후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가계부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은퇴 후 재무적 비재무적 측면 모두가 걱정 없는 사람은 전체 비은퇴 가구의 28.2%에 불과하다. 반면 비재무적 측면은 양호하지만 재무적 측면이 취약한 사람은 전체의 45.5%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 준비는 아직도 미비하다. 덧셈과 뺄셈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그림: 화가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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