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수고하세요

수능 국어 B형에는 올바른 국어 예절이 성취기준의 한 항목으로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의 내용 중에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많아서 학생들로부터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요?'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수고하세요.'라는 말이다.

우리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거나 택시에서 내릴 때, 혹은 일하고 있는 사람과 헤어질 때 별 뜻 없이 '수고하세요.'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표준 언어 예절에서는 '수고하세요.'라는 말이 윗사람에게 고생하라고 명령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윗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나올 때나 택시에서 내릴 때는 '수고하세요.' 대신 '감사합니다.'와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옳다고 한다. 일하고 있는 사람과 헤어질 때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정도의 말을 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더불어 윗사람과 헤어질 때 자주 쓰는 '건강하세요.'나 '행복하세요.'와 같은 말도 '건강하다.', '행복하다.'와 같은 형용사에 명령형을 붙인 것이기 때문에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므로 어법에 맞게 '건강하게 지내세요.', '행복하게 사세요.'와 같이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시험 문제로 출제하려고 하면 국어 교사들 사이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일어난다. 주로 어학 전공자들은 표준이나 규범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며, 표준이나 규범을 알고 있는 사람이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나를 포함하여) 주로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만약 기분 좋게 남들 하는 것처럼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하고 가는 사람에게 "자네 지금 나더러 고생하라고 명령하는 건가? 그건 올바른 언어 예절이 아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나빠지고 그 사람에게는 앞으로 말을 걸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이것을 두고 누가 올바른 언어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수능에 만약 이 내용이 나온다면 학생들이 답은 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습니까?'라는 말을 먼저 건넨다. 이것은 몸이 편안한지, 식사를 했는지 궁금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들은 특별한 뜻은 없지만, 이 말들을 시작으로 인간관계가 맺어지므로 없어서는 안 될 말이다. 이러한 언어의 역할을 '친교적 기능'이라고 한다. 친교적 기능을 가진 말들은 심사숙고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쉽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인데 '수고하세요.'라는 말도 일상생활에서 친교적 언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와 같은 표현도 어법에 맞다고 하는 표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정감 있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통찰이 없이 규범만을 강조한다면 때로는 아는 것이 병이 될 수도 있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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