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무병에 장수 없다'란 말이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평소 병에 안 걸리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데 무병하면 장수하지 못한다니. 이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하지만 말뜻을 곰곰이 씹어보면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첫째, 병 무서운 줄 모르고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 걷잡을 수 없는 큰 병에 걸려 장수하지 못한다는 뜻이 있겠고, 둘째, 병에 대한 면역성이 없어 대수롭지 않는 병에 걸려도 이겨내지 못해 장수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옛말대로 한다면 잔잔한 병쯤은 한 번씩 앓아서 건강의 소중함도 알고 면역력도 키우는 게 나쁠 것도 없다는 뜻이리라.
그 잔잔한 병 중에 으뜸은 뭐니뭐니 해도 감기몸살이다. 매년 한 번쯤은 앓게 되는 무척 친숙한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친숙하다고 해도 감기몸살에 걸리면 기침, 콧물과 함께 열이 나고 온몸이 쑤셔서 괴롭다.
그런데 이 미움의 대상인 감기몸살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 감기몸살의 주된 원인은 면역력 저하다. 그 원인은 과로에 있으니 좀 쉬라는 명령을 내 몸이 스스로 내린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큰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건강을 위해서 미리 경고를 보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루쯤 감기몸살로 집에서 끙끙 앓고 있으면, 그동안 무덤덤하던 아내도 새삼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의 고마움을 느끼고 잃은 입맛을 위해 흰죽을 끓이거나 생강차를 내오며 살갑게 대한다. 딸은 학교에서도 잊지 않고 '아빠, 많이 아파? 힘 내세요'하고 문자를 보내온다. 성큼 커서 저만치 있어 보이던 아들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옆에 와 앉는다.
아! 오늘은 내가 주인공인 것이다. 감기몸살로 가정의 끈끈한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온종일 누워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바쁘게 사느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자주 연락 못하고 소홀했던 사람들, 직장 동료에게 섭섭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기도 한다.
원래 인간의 속성이 활발하게 잘 나갈 때는 모르다가 아프고 힘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과 주위를 되돌아보게 된다. 중병으로 들어눕는 것도 아니고 하루이틀 앓으면서 이 모든 걸 느낀다면 과히 나쁘지는 않는 듯하다.
'약 먹으면 일주일 만에 낫고, 약 안 먹으면 7일 만에 낫는 게 감기'라고 흔히 농담처럼 말하는데 맞는 말이다. 원인인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법도 없고, 그저 증상을 치료할 뿐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몸속에서 사라지는 기간은 후유증이 없는 한 통상 일주일 정도다. 그러니 이 병을 친구로 삼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긍정적으로 접근한다면 과히 나쁘지는 않으리라.
박경동 효성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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