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관심이 선발투수로 집중될 때 왼손투수 차우찬은 묵묵히 어깨를 풀며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삼성이 배출한 4명의 토종 10승대 투수에 이름을 올렸지만, 류중일 감독은 차우찬에게 선발이 일찍 무너졌을 때 긴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 임무를 맡겼다. 불펜이지만 선발투수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보험적 성격이 강했다.
선발은 정해진 로테이션에 따라 몸 상태를 끌어올리면 되지만, 차우찬은 매 경기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해야 해 육체적, 심적으로 부담을 갖게 됐다.
하지만, 차우찬은 주어진 임무를 100% 소화했다. 그가 없었다면 유독 선발 마운드가 부진을 겪은 올 KS에서 삼성이 과연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차우찬은 2차전서 처음으로 마운드를 밟았다. 홈에서 열린 1차전 패배 뒤 반드시 이겨야 하는 2차전서 선발 밴덴헐크의 뒤를 이어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⅔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22개의 공을 던진 차우찬은 3차전에서는 장원삼과 안지만의 뒤를 이어 나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오승환으로 연결, 팀의 3대2 승리에 이바지했다.
차우찬의 진가는 4차전서 빛을 냈다. 선발 배영수가 1⅓이닝 2실점으로 조기 강판하자 삼성 류중일 감독은 차우찬 카드를 꺼내 들었다. 두 번째 투수였지만 사실상 선발 투수 몫을 해냈다. 6⅓이닝 3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혼신의 100구였다. 팀은 1대2로 졌지만 차우찬은 빛났다. 삼성은 차우찬의 호투 덕분에 불펜 투수를 아낄 수 있었다.
차우찬은 지칠 줄 몰랐다. 하루만 쉰 채 6차전서도 강행군을 이어갔다. 2승3패로 몰린 6차전서 차우찬은 선발 밴덴헐크와 배영수가 무너지며 빨간불이 켜진 상황서 마운드에 올랐다. 1대1이던 3회초 1사 2, 3루.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삼성은 와르르 무너질 판이었다. 그때 류 감독의 '콜'을 받은 차우찬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이종욱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1사 만루서 최재훈을 2루수 앞 병살타로 처리했다. 우승 후 류 감독은 승부처로 이때를 꼽았다. 이후 차우찬은 최준석에게 솔로포를 맞았지만 2⅓이닝 1실점으로 팀 승리에 발판을 놨다.
7일 동안 4경기에 등판해 무려 175구를 던졌지만 차우찬은 불펜서 출격 명령을 기다렸고, 마지막 7차전서도 등판해 삼성의 극적인 역전 우승에 공헌했다. KS 5차례 마운드에 올라 12⅔이닝 2실점 역투를 펼친 차우찬이 있었기에 삼성은 윤성환'배영수 등 선발의 불안함에도 우승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010, 2011년 2년 연속 10승 사냥에 성공했던 차우찬은 지난해 두 차례 2군 강등의 아픔을 겪는 등 6승7패2홀드(평균자책점 6.02)로 아쉬움을 남겼다. 데뷔 첫 15승 등극을 목표로 내세웠으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 시즌 절치부심의 각오로 나섰던 그는 2년 만에 10승 고지를 밟았고, KS에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하며 이젠 삼성 마운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이 됐다.
특히 그는 올 6월 비영리봉사단체인 '굿맨'에 조용히 5천만원을 쾌척해 찬사를 받았다. 1억3천만원의 연봉 중 38.5%를 뚝 떼 남을 돕는 일에 쓴 차우찬의 행동은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도 하지 못하는 뜻 깊고 모범적인 일이었다.
우승 후 류중일 감독은 MVP 후보 중 한 명으로 차우찬을 꼽았다. 그는 "감독님이 키플레이어로 꼽아주셨는데, 믿음에 보답한 것 같아 기쁘다"는 말로 피로를 털어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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