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아비뇽(Avignon)은 '교황의 도시'라 불린다. 한때 아비뇽에 교황이 있었던 것에 대한 긍지가 담겨 있다. 아비뇽에 교황청(Palais des papes)이 있게 된 것은 1309년 필립 4세의 지원으로 즉위한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아비뇽에 갇히다시피 하면서 1377년까지 7명의 교황이 거주한 것에서 유래한다. 왕권이 교황의 세속적 힘을 누른 이 시기를 역사는 '아비뇽의 유수'(Avignon Papacy)라는 어두운 과거로 기록한다.
교황청을 다시 로마로 옮기고 나서 아비뇽은 평범한 중세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한때는 가톨릭의 중심지였으나 역사에서 잊혀갔고 교황청에 공급했던 포도밭이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다. 게다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참화로 인해 도청소재지였던 아비뇽은 산업이 쇠퇴했고 소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1947년 아비뇽에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연출가인 장 빌라르가 연극의 지방화를 내세우며 아비뇽축제(Festival d'Avignon)를 개최한 것이다. 당시 방치되다시피 했던 교황청의 앞뜰에서 열린 연극축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듬해 인근도시 칸에서도 국제영화제를 만들어 두 도시는 선의의 경쟁으로 동반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빌라르 감독은 1979년까지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연극을 통해 아비뇽을 세계 최고의 연극축제로 만들었다. 그 결과 제조업 기반이 거의 없는 아비뇽은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콘텐츠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아비뇽축제는 매년 7월 3주간 거행되는데 인구 10만 명의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을 비롯한 음악, 이벤트 등을 보기 위해 수십만 명이 몰려든다. 실내연극을 보기 위해 올해도 13만 명의 유료 관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시선을 대구경북으로 돌려보자. 내년 하반기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안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안동은 전통도시여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를 통한 도시발전은 단기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문화콘텐츠가 중시되는 시대적 흐름으로 볼 때 안동이 지닌 전통과 정신문화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새로운 유교문화의 허브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안동은 어떤 국가나 지역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자적인 유교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정신문화수도다. 그러나 유교문화라 함은 다분히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 이를 극복하는 사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안동이 지닌 유교문화는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으며, 추로지향(鄒魯之鄕)의 추상적 이미지를 구체적인 유교문화 허브로 바꾸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둘째, 안동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안동은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을 비롯하여 군자마을 등 수많은 종갓집과 도산서원, 병산서원, 소수서원 등의 빼어난 건축물도 남아 있다. 또한 헛제사밥, 간고등어, 제비원소주 등 스토리가 있는 음식브랜드도 풍부하다. 게다가 안동댐, 임하댐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이 같은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스토리텔링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안동에는 하회탈, 차전놀이 등 유형문화재뿐만 아니라 구전, 설화 등 무형문화재도 풍부하여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공감하게 된다. 이를 위해 전해오던 소재를 현대화하기 위해 드라마 공모, 실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연극제 개최 등도 구상해 볼 수 있다. 다만 권선징악적인 단순한 내용보다는 사랑과 반전이 있는 대중친화적 소재를 통해 킬러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동에 가면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표어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정신문화만큼이나 중요한 물질문화가 공존하는 시대이기에 한류의 원조인 K팝뿐만 아니라 현대화된 정신문화가 녹아든 드라마, 영상, 연극 등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아비뇽은 교황의 도시가 아니라 축제도시로 변모했다. 어두웠던 교황청 뜰에는 일 년 내내 다양한 공연과 연극이 열리고 수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도청 이전을 계기로 안동은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안동에 가면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문화를 만나게 해야 한다.
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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