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단풍이 언제 이처럼 고왔을까?'
토함산(吐含山)과 함월산(含月山) 사이 경주 시가지와 양북을 잇는 추령터널을 막 지나자 눈앞에 보석함을 펼쳐 놓은 듯하다. 10월이면 단풍 시즌이 대충 끝나지만, 늦더위는 계절마저 보름쯤 뒤로 물렸다.
황룡골을 지나 범곡과 장항리를 지나는 길에도 단풍길은 끊어지지 않는다. 신라고찰 기림사(祇林寺)에도 단풍은 여전하다. 신라 56왕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왕의 길'을 답사하기 위해 나선 길이다.
장항리를 지나며 잠시 끊어진 단풍길은 기림사에서 다시 시작됐다.
기림사를 왼편으로 끼고 산길이 넓게 펼쳐졌다. '왕의 길'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도 늦가을 단풍의 향연은 계속된다. 도통골로 들어섰다. 기림사에서 함월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곡을 마을 사람들은 도통골이라 부른다. 이 골짜기에서 도를 통한 사람이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통골 초입부터 비경이다. 용연을 휘돌아 내려온 호암천에는 맑은 물에만 사는 민물 말과 피라미, 고둥이 지천이다. 구절초와 개망초, 맥문동이 계절을 잊은 듯 아직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왕의 길'은 완만하다.
신라왕들이 수레와 마차 등 대규모 신하와 군사들을 이끌고 행차하기 위해 나지막한 이 길을 선택했을 것으로 어림짐작이 된다. 용연을 지척에 두고 기암괴석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절벽은 선녀탕을 감싸고 있다.
눈을 들어 산 정상을 올려다보니 빨강 노랑 파랑 주황 갈색이 섞여 오묘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용연폭포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에게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어 돌아오던 길에 옥대의 비늘 두 쪽을 폭포에 넣었더니 용이 되어 날아갔다는 전설이 담긴 곳이다. 폭포가 크지는 않지만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는 신문왕의 효심이 전해져 오는 곳이다.
용연폭포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단풍이 좋은 굴참나무와 졸참나무, 신갈나무, 당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어른 키높이만 한 생강나무와 초피나무, 누리장나무 등이 강한 향기와 함께 단풍을 뽐낸다.
바람이 '휙' 한 차례 불자 낙엽비가 우수수 떨어진다. 발에는 떨어진 낙엽이 발목까지 차오른다. 왕의 길 코스에서 가장 난코스라 할 수 있는 용연폭포와 불령봉표 간 900m 거리. 오르막이 계속돼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봉표가 있는 곳이 불령고개의 정상이다.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화강암 표면에 '연경묘향탄산인계하불령봉표'(延慶墓香炭山因啓下佛嶺封標)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831년(순조 31) 10월에 새긴 것으로, 순조가 아들 효명세자(1809~1830'묘호 연경)의 봉제사와 그에 따른 경비를 조달하는 산이니 일반인의 출입과 벌채를 막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왕의 길에는 신라 56왕의 발자취는 물론 문무왕과 아들 신문왕, 순조와 아들 효명세자 등 신라와 조선시대의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산에서 만난 한 등산객은 "기림사~불령봉표 구간은 경주의 마지막 남은 비경이다.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모차골인데 거기는 단풍이 더 좋다"며 "굳이 내장산과 설악산을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왕의 길은 월성에서 월지(안압지), 선덕여왕릉, 명활산성, 모차골, 함월산, 수렛재, 세수방, 용연폭포, 기림사, 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 수중릉까지 연결되는 신라의 주교통로이다.
이 가운데 기림사~용연폭포~불령봉표 코스는 서라벌 동쪽 바닷가 아진포 마을의 빈민이었던 석탈해가 신라로 잠입했던 길이며, 문무왕의 장례길이자 신문왕이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은 길이기도 하다.
신라 56왕의 통치 이념과 역사가 담겨 있는 '왕의 길'을 복원하고, 문화 콘텐츠 개발을 위한 의미 있는 행사가 천년고찰 기림사에서 열린다. 매일신문사가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후원하는 '2013 경주 왕의 길 걷기대회'는 9일 오전 10시 기림사에 마련된 주행사장을 출발해 용연폭포와 불령봉표까지 왕복 5㎞, 2시간을 돌아오는 코스이다. 낮 12시에는 미니콘서트가 진행된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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