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성률의 줌 인] 촘촘해진 사이버망, 멀어지는 인간관계

헨리 알렉스 루빈 감독의 '디스커넥트'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가 감동을 줄 때만큼 평론가들이 기쁠 때도 없다. 사실 잔뜩 기대했던 영화가 기대만큼 또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을 때보다 더 기쁜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가 의외로 좋을 때이다. 물론 가장 나쁜 경우는 기대했던 영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지만. 헨리 알렉스 루빈 감독의 '디스커넥트'를 보면서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베니스영화제에 비경쟁으로 초청되었고, 토론토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다고 하더라도, 헨리 알렉스 루빈은 거의 무명에 가까운 감독이다. 물론 2005년에 연출한 '머더볼'이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지만, 그 다큐는 공동으로 연출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디스커넥트'는 극영화가 아닌가.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말하면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 영화가 만만치 않은 영화라는 것을 알았고, 엔딩으로 다가갈수록 가슴 졸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보면서 마음 졸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도 좋고 음악도 적절하며 연출력도 좋다. 무엇보다 메시지가 좋고 사회적으로 옳다.

영화의 소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즉 SNS이다. 현대인들은 외로움을 달래고 지인과 소통도 하고 타인의 정보를 얻기 위해 SNS를 이용한다. 그곳에 가면 오랫동안 연락이 드물었던 친구도 만날 수 있고, 평소 좋아하던 이들의 최신 정보와 최근 고민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만남보다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을 통해 소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만남은 진정한 인간관계를 토대로 한 것일까? 이 공간은 안전한 공간일까? 이런 의문은 많이 제기되어 왔고, 여러 이유 때문에 많은 이들이 SNS를 떠나기도 한다.

'디스커넥트'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감독은 SNS에 긍정적이지 않다. 영화는 크게 보면,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아들을 잃고 남편과도 대화가 단절된 여성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이트에서 위안받지만 채팅하는 순간, 전 재산이 피싱당해 고통을 겪는다. 지방 방송국 기자가 특종을 위해 불법 성인사이트에서 화상 채팅을 하는 18세 소년과 거래해, 이 방송이 CNN에 방송되어 기쁨을 누리지만 곧 FBI에서 수사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음악에만 빠져 있는 소년을 골탕 먹이려고 미모의 여성으로 SNS에 등록해 그에게 접근한 소년의 이야기. 외로웠던 소년은 가상의 소녀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된다.

세 개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다가 서서히 하나의 주제 아래 모아진다. 그런데 모아지는 방식이 각 에피소드가 인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으로 연결된다. 심지어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육체적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슬로 모션까지 같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는 상황으로 마무리되는 것.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여러 상황을 보여주면서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세 에피소드를 짧게 짧게 연결하지만 그 연결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나중에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디스커넥트'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독히도 단순하고 직설적이게 교훈적이다. 옆에 없는, 사이버 상의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하지 말고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말로 고민을 토로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들과 함께하라는 것. 변호사 아버지는 아들이 잘못된 뒤에야 자신이 아들에게 무관심했음을, 아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며, 아내가 죽은 뒤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직장까지 바꾸었던 아버지는 자신의 완고한 방식이 오히려 아들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보호하려 하며, 피싱을 당한 후 돈을 찾기 위해 아내와 함께하면서 비로소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돈이 아니라 잃어버린 부부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자식과 대화가 없으니 밖으로 떠돌게 되고, 밖으로 나간 자식들은 매춘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다시 이를 어른들이 이용하면서 악순환이 거듭된다.

사이버 세상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관계망은 점점 촘촘해졌다. 컴퓨터만 켜면, 아니 스마트폰만 열면 수많은 정보가 있고 수많은 사람들과 바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과의 만남은 진실하지 않다. 여러 겹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버 망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는 이 모순된 현실. 그리고, 마침내 불법과 탈법의 온상이 되어가는 사이버 공간. 영화는 진정한 인간관계는 오프라인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먼저 진정으로 다가갈 때 형성될 수 있다고 한다. 어떤가? 스마트폰을 놓고, 컴퓨터를 끄고 가까이 있는 이들과 먼저 깊은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이.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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