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동네 전통시장을 자주 따라나섰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함께 간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할머니께서 저녁장을 보러 가신다고 하면 어머니는 포기하신 것 같았다.
늦가을부터 겨울, 해가 일찍 떨어지는 어둑어둑한 전통시장은 참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찜통 주변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다. 꼬챙이에 꽂힌 어묵을 하나씩 먹고 있다. 즉석에서 튀겨내 설탕을 버무려 주는 찹쌀 도넛,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호떡. 요즘은 좀처럼 볼 수 없는 빨간 고춧가루 양념과 채 썬 당근과 대파로 먹음직스럽게 장식된 양념 닭발.
거의 매일 저녁 장을 보는 것은 우리 집뿐 아니라 그 시절의 동네 아주머니들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주부들의 손에는 그날 저녁에 만들 식재료와 다음 날 아침에 사용될 최소량의 반찬재료가 들려 있다. 당시 전통시장 가기는 요즘 주부들이 매일 아침 피트니스로 출근하는 것과 같다.
오늘 아침 우리 집 식탁에는 며칠 전 담근 딱 맞게 익은 깍두기와 무시래기 된장국, 햅쌀과 현미를 넣어 지은 밥으로 만든 소고기 김밥, 가을 새우로 담근 새우 장이 올라왔다.
어제 점심 무렵, 핸드폰 바탕화면에 내려받은 백화점 식품관 어플에 접속을 하였다. 요즘 여러 가지 브랜드의 쌀 맛을 보는 재미에 올가을 다이어트는 포기했다. 쌀과 현미, 발아 현미를 주문하였다. 주문과 동시에 즉석 도정을 해 주기 때문에 조금 비싸더라도 쌀은 백화점 식품관에서 사고 있다. 활 전복이 5마리에 1만원에 판매하는 행사가 있어서 전복도 주문했다. 동네 마트에서는 구입하기 어려운 샐러리와 채소 몇 가지도 함께 구입했다.
어제 오전 업무를 마친 후 점심을 먹고 나서, 12시 40분쯤 백화점 식품관 쇼핑몰 사이트에 접속해 이것저것 둘러보았다. 오후 1시 조금 전에 장보기 바구니에 담아 둔 상품을 구입하였다. '부재 시 현관문 앞 배달 요망'이라고 부탁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배달 시간은 오후 3시로 설정하였다. 백화점 식품관의 양곡 담당 판매사원이 전화를 걸어온다.
"고객님, 현미는 몇 부 도정을 해 드릴까요." "배달시간은 3시 맞으시죠." 현미도 살짝 도정하는 고객이 많다고 판매사원이 일러 주기에, 같은 수준으로 도정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니 현관문 앞에 아까 점심 무렵에 장을 봐 둔 바구니가 놓여져 있다. 채소는 깨짐 방지용 비닐로 돌돌 감겨 있고, 활전복에는 얼음팩을 넣어 놓았다. 직접 가서 장을 봐 오는 것보다 더 꼼꼼히 포장이 되어 있었다.
미국 식품쇼핑사이트에서 구입한 앤초비 통조림과 태국요리용 핫소스인 스리라챠소스, 말린 허브 가루도 도착하였다. 국내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직접 구입을 하면 반 가격에 살 수 있다. 미국에서 3, 4일 만에 우리 집에 배송이 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요리를 하고 싶을 때 필요한 재료들은 외국 사이트에서 구매한다. 요즘 태국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카레 가루와 코코넛 밀크, 팟타이 페이스트도 함께 구입하였다. 역시 이 쇼핑몰 사이트를 핸드폰에 바탕화면에 저장해 두고,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틈이 나는 시간에 가끔 들어가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한다.
참으로 과거와 달라진 장보기 패턴이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장보기가 해결된다. 인터넷쇼핑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푸드 블로그 '모모짱의 맛있는 하루'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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