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관광지인 미국 하와이에는 세계의 미식가들을 줄 세우는 향토음식점이 있다. 와이키키해변 카파훌루 에비뉴의 원주민 마우이족 전통음식점인'오노 하와이안 푸드'(Ono's Hawaiian Food)다. 낡고 허름한 식당 안에는 작고 오래된 나무탁자 10개가 전부다. 하와이안 전통음식을 내놓을 뿐 훌라춤 퍼포먼스나 특별한 고객서비스도 없다. 그럼에도 손님 수만큼은 와이키키 해변의 초호화 디너쇼가 벌어지는 매머드급 시푸드 레스토랑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50년 동안 이어온 오노 하와이안 푸드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5평짜리 작은 식당에 매일 줄 서는 미식가들
오노 하와이안 푸드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2층 건물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음식점이다. 이곳은 하와이 원주민의 전통음식인'칼루아피그'(Kalua Pig)와 '라우라우'(Laulau)를 판다. 이 작고 오래된 식당은 마치 전통 5일장이 서는 시골장터의 식당을 보는 듯하다.
식당의 외형과 달리 매일 가게 앞에는 음식을 맛보려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선다. 대기줄은 식당 옆 가게 2곳을 지나도록 길게 이어진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지만 희한하게도 기다리는 손님들의 표정이 밝다.'No get mad!(화내지 말 것!)', 'We will be with you very soon(곧 당신과 함께할 수 있으니…)', 'The right be Cool!(차분하게 오른쪽에서 기다리고 있으시오)'출입구에 붙어 있는 고압적인 안내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곳 단골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켈빈 우(43'여) 씨는 "오늘 저녁을 위해 남편과 함께 30㎞를 달려 왔다"며"이곳의 칼루아피그와 라우라우 맛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식당 안 벽면에는 유명인사들의 방문 기념사진으로 빼곡하다. 가수, 영화배우 등 인기 연예인은 물론이고, 격투기 세계챔피언, 서핑대회 우승자, 유명 골프선수, 농구선수에 정치인까지 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매년 하와이 관광청과 언론이 선정한 하와이안 베스트푸드 공로패도 수도 없이 걸려 있다. 특히 원로 코미디언과 옛 영화배우들의 방문 기념사진은 긴 세월을 말하는 듯 누렇게 변색돼 있다. 이 가게 주인인 토요 시마부쿠로 씨는 올해로 78세다. 평생 주방과 서빙을 도맡아 온 그는 몇 해 전부터 실질적인 운영은 아들인 클래이트(60) 씨에게 맡겼다. 가업이 2대째 이어지는 셈이다. 매니저 비비안 리(71'여) 씨도 이곳에서 40년 동안이나 일을 했다.
◆가장 전통적인 향토음식이 세계화의 경쟁력
비비안 씨가 가져온 메뉴판은 달랑 종이 한 장이다. 흑백으로 복사한 종이에는 자잘한 글씨로 음식값만 매겨져 있다. 칼루아피그가 6달러90센트, 라우라우가 6달러35센트, 세트 메뉴는 모두 16달러50센트다. 주 메뉴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모둠세트는 22달러50센트. 김치도 눈에 띈다. 가격은 2달러. 월요일엔 비프스테이크도 하고 화요일은 커리스튜(카레)를 한다고 써 놨다."처음 왔으면 모둠세트가 좋아요. 이것저것 다 맛볼 수 있으니까요." 비비안 씨가 권하는 대로 주문을 하고 둘러보니 식탁에 앉은 손님들이 하나같이 주방 입구만 쳐다보고 있다.
먼저 '카우비 수프'라는 큼지막한 소갈비가 들어 있는 맑은 고깃국이 나왔다. 고깃국 위에 알싸한 맛이 강한 야채를 수북하게 썰어 얹었다. 한 숟갈 떠먹어 보니 영락없는 갈비탕이다. 이어 '포이'(Poi)라 부르는 연보랏빛 토란죽이 나왔다. 타로(Talo)라는 토란 뿌리를 찧고 갈아서 끓인 걸쭉한 풀죽으로 하와이 원주민들의 주식이다. 포이는 입안이 매울 때 떠먹어도 좋고, 칼루아피그와 라우라우를 섞어서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반쯤 말려 꾸덕꾸덕한 소고기 육포인 피피카울라(Pipikaula) 구이와 로미 샐몬(Lomi Salmon)이라는 토마토 연어 무침회, 그리고 하우피아(Haupia)라는 하얀 두부 같은 코코넛 푸딩이 식탁에 차려졌다. 모두 하와이안 전통음식들이다.
메인 음식인 칼루아피그는 주먹만한 돼지 고깃덩어리를 타로 잎으로 여러 겹 싸고 티(Ti)라는 널찍한 열대 차나무 잎사귀에 다시 감싼 뒤 달군 화산석 돌무더기에 4시간 동안 쪄낸 음식이다. 식당 주방이 너무 비좁아 시골집에서 쪄서 가져 온다고 한다. 이어서 나온 라우라우는 돼지고기의 육질이 풀어져 국수 면발처럼 보일 정도로 푹 쪄낸 음식이다. 야자수 모닥불로 달군 화산석에 바나나 잎을 깔고 통돼지를 얹은 뒤 바나나 잎으로 다시 덮고 화산석 돌멩이를 그 위에 올리고는 흙 속에 묻어 익혀 낸 음식이다. 무려 6시간 동안 쪄 낸다고 한다. 전통방식으로 찐 돼지고기는 포이와 양파, 핫소스를 곁들여 가며 먹는다. 차나무 잎사귀에 싸서 오랫동안 찐 돼지고기의 풍미가 구수하다. 부드러운 타로 잎에도 고기 물이 배어난다. 칼루아피그는 타로 잎 향이 나고 통구이 라우라우는 숯불 냄새가 난다. 고기가 부담스러운 손님에겐 푹 익은 타로 잎이 고기보다 더 맛나고 매운 칠리소스도 잘 어울린다. 라우라우를 포이와 섞으면 새로운 맛이 난다.
◆3대(代)가 찾아오는 반세기 한결같은 맛
'오노'는 하와이 말로 맛있다는 뜻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고객 평은 '하와이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고 가장 와 볼만한 곳'이라 돼 있다. 대기하는 손님들을 위해 각종 신문보도를 스크랩해서 창문에 붙여 놨다. 그중에서도 '최우수 음식들을 선발해 놓고 엄정하게 평가했는데 오노집 음식은 그중에서도 최고였다'는 하와이관광청의 선정 후기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이곳은 화장실도 없고 실내장식은 50년 전 개업 당시 그대로다. 가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리한 적이 없다.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없고, 현금만 받는다. 더욱 기막힌 것은 오노 하와이안 푸드라는 식당 간판로고를 새긴 검은 색 티셔츠와 모자도 기념상품으로 판매한다. 티셔츠를 사려고 보니 이미 물건이 매진돼 팔 수 없단다. 그래도 와이키키 해변의 관광안내소나 하와이관광청에서 가장 먼저 손꼽는 전통음식점은 이곳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이 같은 메뉴로 반세기 동안 변함없이 장사를 해왔다는 자체가 경쟁력일까. 아니면 좁고 허름하며 오래된 분위기 자체가 차별화된 경쟁력일까. 50년 단골고객인 캘리포니아의 아더(Ader) 씨가 식당에 보낸 감사 편지는 믿기지 않는 인기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50년 전 신혼여행을 와서 아내와 처음 먹었던 음식들이 몇 년 전 아들들과 같이 와서 먹어도 그 맛 그대로였지요. 오늘 내 손자들과 같이 와서 똑같은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어서 감개무량합니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맛과 꾸밈없는 서비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오노 하와이안 푸드에는 웃는 날만 있고 모두가 더욱 행복하기를 빌겠습니다."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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