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베를린 장벽 만든 흐루쇼프

한국의 독립이 미국 중국 영국이 참가한 1943년의 카이로 선언에서 처음 약속했다면, 한반도의 남북 분할은 1945년 열린 얄타회담에서 결정됐다. 미'영'소 3국이 참가해 독일과 일본, 우리나라에 대한 처리 문제를 다룬 이 회담의 또 다른 피해국은 독일.

패전국 독일을 동서로 나눠서 서방진영과 소련이 분할 통치했고, 동독 영토에 있던 베를린도 미국 영국 프랑스 3개국이 통치하던 지역과 소련이 통치하던 지역으로 나뉘었다.

이후 체제의 차이를 느낀 베를린 시내 동독 거주 주민들의 대서독 탈출이 급격히 진행되자 위기를 느낀 동독과 소련은 궁여지책으로 1961년부터 동'서 베를린 사이에 40여㎞에 이르는 길고도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을 쌓았는데 이게 동서냉전의 상징물인 '베를린 장벽'이다. 이 장벽을 쌓은 후로는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브란덴부르크문을 통해서 왕래가 허용됐다. 당시 소련에서 베를린 장벽을 만드는 것을 결정한 사람이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이다. 이 장벽은 1989년 오늘 첫 자유 왕래가 허용되면서 무너졌다. 현재 일부만 기념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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