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신야권연대 대치정국 대통령의 해법

6박 8일 유럽 3개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의 일성은 문화재 보수 부실을 엄단하라는 것이었다. 숭례문의 부실한 복원과 석굴암 본존불 대좌 균열 등을 포함한 날림과 엉터리 문화재 보수 현실이 '원전 비리' 못지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정치 상황은 여전히 경색 국면이다. 윤석열 여주지청장에 대한 중징계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의 표명이 잇다르는 가운데, 민주당 진보당 안철수 등이 손잡은 신야권연대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관련 원샷 특검과 국회 특위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신야권연대와 강대강 대치국면을 직면하게 된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순방길에서 두 가지 곤경을 겪었다. 하나는 첫 방문지인 파리에서 터졌다. 일단의 재불 한국인들이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 앞에 모여 한글과 불어로 '박근혜는 한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닙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세운 채 반정부 집회를 가졌다.

그들은 대통령을 손아래 동생 부르듯이 '박근혜'로 쓰며,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시위 플래카드에 막말을 쓴 것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집회에서 '박근혜 씨'로 깎아내려 부른 것과 꼭 닮았다. 유럽 순방에 동행했던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과연 시위를 한 이 사람들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현장 사진 등 증거물을 법무부를 통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여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박 대통령이 겪은 두 번째 곤경은 해프닝에 가깝지만, 민망한 국면을 잘 풀어간 순발력이 돋보였다. 영국 방문 마지막 날, 박 대통령은 런던 한복판에 있는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핵심이자 세계 자본을 쥐락펴락하는 금융 시스템을 갖고 있는 시티오브런던 로저 기포트 시장의 만찬에 초청받았다. 만찬장인 시티오브런던 길드홀에 입장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던 박 대통령은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졌다. 부상은 없었지만 모두 놀랐다. 로저 기포트 시장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던 박 대통령은 '드라마틱 엔트리'(dramatic entry, 극적인 입장)라는 유머로 긴장을 녹이는 여유를 보였다. 만찬장을 나가면서는 '콰이어트 엑시트'(quiet exit, 조용한 퇴장)라는 대조적 유머로 깔끔하게 마감했다.

시티오브런던은 전쟁이 나면 국가에 돈까지 빌려줄 정도로 막강한 자본을 갖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유권자)뿐 아니라 기업시민(기업체)에도 투표권을 준다. 시장도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니라 기업체 대표가 맡는다. 여왕이 다스리는 영국 땅이지만, 치외법권 같은 특권을 갖고 있어서 여왕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제국주의 시대를 넘어 금융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영국의 시티오브런던에 대항해서 미국이 급히 만든 금융가가 바로 미국의 월스트리트이다. 시티오브런던 시장의 초대를 받으면 남자들은 턱시도를 입어야 한다. 실제로 지난 1995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수행한 윤여준 전 장관(당시 공보수석)은 시티오브런던의 턱시도 관행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프랑스'영국'벨기에 순방에서 선진 창조경제와 문화 융성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왕성한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박 대통령의 롤모델이라고 해서 영국 정부로부터 그 초상화를 선물받은 엘리자베스 1세처럼 사회적 약자 특히 절대 빈곤층에 대한 정부 책임을 더 강화해 나가고, 지금 다시 거리로 나서는 야권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고 소통의 장을 마련해서 정치의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공자도 논어 안연 편에서 정치란 경제 군사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공이 공자에게 이 3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먼저 군사를 버리고 다음에 경제를 버리라고 했다. 군자, 즉 대통령이 끝까지 간직해야 할 것은 백성들의 신뢰이다. 18일 시정연설이 예정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죽기 살기로 반발하고 있는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함께 할 수 있는지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대선 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한 토론회에 나와 어머니 리더십으로 국민의 삶과 민생을 챙기겠노라고 약속했다. 이제 어느 정도 국정의 틀도 잡혔으니 그 언약 실천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서경 태갑 편에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다고 했다. 동북아 질서가 재편되는 위기 상황에서 야당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내는 협상의 정치를 펼 것을 기대한다. 그와 더불어 빈민구제의 국가 책임을 명확하게 한 구빈법(1601년, Elizabethan Poor Law)을 제정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따뜻한 마음을 우리 식으로 풀어나가는데도 최선을 다해야한다. 18일로 국회 시정연설이 예정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대강 대치정국을 풀어갈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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