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이 2001년 '친구'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다. '억수탕'과 '닥터 K'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후 고향 부산의 건달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 알려진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영화화한 것이라 더욱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친구'가 특이한 것은 철저하게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고 부산에서 촬영한, 부산 영화라는 점이다. 단언컨대, '친구' 이전 부산에서 촬영하거나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무수히 많았지만, 부산을 제대로 그린 영화는 없었다. '친구'는 부산 사람이 부산의 정취와 향수를 제대로 영화 속에 녹여낸 첫 영화였다.
2001년 '친구'는 흥행 기록을 새로 작성했다.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 기록을 가뿐히 넘어 800만 대를 기록한 것. 당시 이 기록은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여겨지던 때였는데, '친구'가 그 일을 한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극장에 잘 오지 않던 30, 40대가 대거 극장에 몰려오면서 기록 달성이 가능했다. 영화 속에 그려진 1970년대 중후반과 1980년대 초중반의 그 모습들, 즉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영상을 보며 그 시절의 분위기에 취해 들어갔다. 물론 강한 남성들이 내뿜는 액션을 통해 대리만족도 경험했을 것이다. 여성을 비하한다고 할 만큼 여성 비중이 약했지만 장동건의 죽음을 둘러싸고 신드롬이 형성될 정도로 강한 흥행을 기록했다.
이후 곽경택은 '친구'와 비슷한 영화를 만들었다. 강하고 마초적인 남성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재현한 것. '챔피언' '똥개' '태풍' '사랑'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제목만 봐도 내용이 보이는 영화들. 어떻게 보면 곽경택은 참 우직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의 영화에는 신기하게도 플래시백이 없다. 모든 영화는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에서 사건이 일어난 후 곧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 그 대결이 스포츠든, 분단을 다루었든, 조폭 이야기든 대부분은 남성의 육체적 대결을 전면에 전시해, 어둡게 끝이 난다. 나는 이렇게 우직한 방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곽경택 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친구2'를 곽경택이 만든다고 했을 때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했다. 이제 그의 나이 마흔일곱 살이다. 지천명(知天命)을 향해 다가가는 나이. 얼마나 넓고 깊어졌을까? 친구를 죽인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로 변주될 것인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갈등 구조를 어떻게 취할지 궁금했다. 전편의 갈등 시발점이었던 동수는 이미 죽었는데, 감옥에서 나온 준석이 누구와 갈등을 일으킬 것인가? 다른 조직과 부딪친다면 굳이 '친구2'라는 제목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오래된 친구를 기리며 갈등하는 영화의 변주.
곽경택은 죽은 동수의 아들을 등장시킨다. 전편에서 음악을 하던 레인보우의 한 여성과 동수가 죽기 전에 관계를 맺어 아이를 가졌다는 설정을 만들었다. 그 아들 성훈이 준석의 조직원과 싸워 우연히 같은 감옥에 있을 때 준석이 보호해주며 호감을 갖는다. 그렇다면 악인은? 준석이 출소하니 그의 밑에 있었던 은기가 이미 조직을 장악하고 있었고 준석의 수족도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결국 준석은 조직을 되찾기 위해 은기와 대결하는데, 이때 옛 조직원과 성훈 패거리를 동원한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준석과 성훈 사이에는 사연이 있지 않은가? 준석이 성훈의 아버지 동수를 죽이도록 교사한 사람 아닌가. 아무리 준석과 동수가 친구였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는 살인자다. 영화는 이 관계를 은기와의 흐름 속에서 풀고, 아슬아슬하게 봉합한다. 결국 성훈에게 준석은 아버지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 아버지를 죽였지만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 이 역설이 '친구2'에 있다.
어떻게 보더라도, '친구2'는 아버지에 대한 영화이고 가족에 대한 영화이다. 하긴 조폭도 패밀리니, 가족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영화는 준석의 아버지 철주를 등장시켜 그가 박정희 집권 초기 부산에서 터를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은 '대부2'를 연상시킨다. 혈혈단신으로 미국에서 패밀리를 만든 로버트 드 니로처럼 철주는 일본 야쿠자와 대결하면서 부산에서 패밀리를 일구었고, 지금 그의 친구가 조직 회장을 맡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준석이 조직을 되찾는 것은 아버지에 이어 정통성을 확립하는 것인데, 가부장과 장자에 대한 지겨울 정도의 집착은 조폭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러나 곽경택은 '친구2'에서 너무 많은 욕심을 낸다. 그는 속편으로 '친구'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부산 조폭의 기원과 미래를 모두 이야기하며 '부산 대부'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은데, 현실은 이와 다르다. 철주, 준석, 성훈의 조폭 패밀리 삼대의 이야기가 두 시간 안에 펼쳐지니 이야기는 촘촘하지 못하고 큰 그림만 거친 액션 속에서 녹아난다. 철주, 준석 이야기, 성훈 이야기는 각각 삼부작이 되었을 때 비로소 '부산 대부'가 탄생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2'에서는 아예 철주의 이야기로만 채우거나, 성훈과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또 하나, 적대자로 등장한 은기나 옛 부하들에 대한 정보가 1편에서 없었으니 속편이지만 속편의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강성률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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