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별명은 만화 주인공 '달려라 하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잘 극복하고 달리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실질적인 소녀가장 역할을 했다. 결혼 후 안정을 찾았다.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힘든 세상살이를 극복하고 오뚝이 같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일어섰다. 이제 명예로운 환경미화원이자 주목받는 주부 마라토너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새벽 출근해 점심 거르고 1시간, 퇴근 후 2시간 훈련
이연숙(42'달서구 갈산동) 씨는 대구 달서구청 여성 환경미화원이다. 매일 새벽 6시에 출근, 달서구 이곡동 세인트웨스턴 호텔~성서공단네거리~상업은행네거리의 왕복 3㎞ 구간 거리 청소가 임무다. 환경미화원을 시작한 지 3년째다. 그의 생활은 독특하다. 새벽에 출근해 정오까지 열심히 거리청소를 한 후 점심시간엔 1시간 동안 달리기 연습을 한다. 물론 점심은 거른다. 오후 5시 일과를 끝낸 후에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연습을 시작한다. 훈련장은 경북기계공고 운동장이다. 2시간 동안 강약을 조절하며 훈련을 끝낸 후 오후 8시쯤 귀가한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남편(홍명표'48'회사원)도 이제는 후원자가 됐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인생도 바뀌었다. 2010년 10월 달서구청 환경미화원 선발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했다. 환경미화원 동료로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엄성호(61) 씨는 "천성적으로 쾌활한 성격으로 환경미화원을 천직으로 알고 수영과 마라톤으로 단련된 체력으로 성실하게 일한다"고 칭찬한다.
◆입문 6년째…첫 출전 18위 다음엔 2위 "주위 깜짝"
이 씨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6년 전이다. 결혼 후 직장생활을 하며 수영을 하던 중 동료의 권유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몇 개월 연습 후 첫 출전에서 18등을 했다. 한 달 뒤 영남대마라톤대회에 출전해 30대 여성 10㎞ 부문에서 2등을 했다. 성취감을 느꼈다. 수상대에 오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씨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단 하루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제 인생에 포기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년 한 해 동안 전국 마라톤대회에 45회나 출전했고, 마라톤을 시작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총 300여 회 출전했다. 시합 도중에 달리기를 포기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역경도 있었다. 지난해 6월 25일 충남 당진마라톤대회에 출전, 시합 도중에 복통이 왔다. 포기하고 싶었으나 이를 악물고 10㎞를 완주했다. 대회를 마치고 병원으로 직행, 과로 등으로 인한 세균성 질환이란 진단을 받고 2주일 입원치료를 했다. 퇴원 후 동료들의 격려로 한 달 만에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이 씨는 10㎞ 전공이다. 하지만 풀코스도 13번이나 완주했다. 이 씨는 그동안 각종 대회에 출전해 받은 상금을 모아 지난해 달서구청 인재육성재단에 1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어린나이에 부모 잃고 소녀가장으로 억척스런 삶
청도에서 곤궁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무능력자였다. 어머니가 농사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열한 살 철부지 소녀가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와 동생을 돌봐야 했다. 동네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거나 아기를 돌봐주고 약간의 채소와 쌀, 돈을 받아 생활했다. 하지만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중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교에서 응원단장을 맡는 등 자신을 채찍질하며 아버지와 남동생을 뒷바라지했다. 1986년엔 효녀로서 청도군이 주는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고교 1학년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경산 진량공단 내 섬유회사에 취업, 낮에는 일하고 저녁엔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다. 오후 9시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또다시 야간작업을 해야 했다. 고교졸업 후 회사에 근무하면서 동료직원의 소개로 성실한 청년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과 함께 가내공업을 하고, 장갑공장, 우유 배달, 정수기 판매 등 억척스런 삶을 살았다.
◆올해 4개 대회 우승…내년 풀코스 3시간내 목표
이 씨는 그동안 각종 마라톤대회에 출전, 50여 차례 수상했다. 요즘은 거의 한 달에 1, 2회 출전하며 10㎞ 부문에 최강자로 우뚝 섰다. 특히 올해는 3월 제주MBC 평화마라톤대회에서 1위를 시작으로 4월 7일 영주 소백산대회, 4월 21일 대전 3대 하천대회, 4월 28일 낙동강물레길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마라톤 동료들은 "좀 더 일찍 선수로 키웠다면 제2의 임춘애 같은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우승 비결에 대해 이 씨는 "마라톤도 여러 번 고비를 넘겨야 하는 인생살이와 똑같다"고 한다. 경기하면서 경쟁상대의 표정과 숨소리 등을 통해 상대의 상황을 파악하는 등 철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 이 씨의 최대 특기는 스퍼트다. 골인 지점 400여m를 남겨두고 100m 달리기를 하듯 전력 질주하여 경쟁자를 따돌리는 것이다. 이 씨는 요즘 뚜렷한 목표가 있다. 내년 3월 서울동아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 2시간 59분 59초 내 기록달성으로 '마라톤 명인' 패를 받는 것이 목표다. 그는 "제 인생에 포기는 없다.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달릴 것"이라고 밝은 웃음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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