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모르던 한 여인이 사랑을 알았다. 가슴에 품고 있는 시를 통해 정을 주고 정을 받았다. 수많은 남자들의 유혹이 있었건만 모두 뿌리치고 고이 간직했던 마음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임은 한양으로, 시인은 부안에 남았다. 예고된 이별이었지만 밤이면 밤마다 그리움과 사무침만 남았다. 봄날이 너무 추워 겨울옷을 손질하는데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려 꿰매고 있는 바늘과 실을 적셨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봄날이 매우 추워 겨울옷을 꿰맵니다
사창(紗窓)가 햇살 한 줌 살며시 비쳐오니
옥루가 바늘과 실 적시어 손길 따라 맡긴다네.
春冷補寒衣 紗窓日照時
춘냉보한의 사창일조시
低頭信手處 珠淚滴針絲
저두신수처 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매창(梅窓) 이계랑(李桂娘'1573~1610)으로 부안 아전이었던 이탕종의 첩 태생이다. 어려서 한문을 배웠고, 거문고 타기를 즐겼다. 본명은 '향금'(香今)이었는데 기생이 된 후로 '계랑'으로 바꾸고 호를 '매창'이라 했다.
위 한시를 번역하면 '봄날이 추워 겨울옷을 꿰매고/ 사창에는 햇살이 비치는구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기니/ 옥루가 바늘과 실을 적시네'라는 시상이다. 매창에게 유희경이 떠나고 없는 봄은 너무나 추웠던 모양이다. 추울 때 입던 옷을 다시 꺼내어 수선하면서도 그리운 마음에 바느질은 되지 않아 눈물만 흘리는 서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마침 유희경 역시 임진왜란 중이라 만나지 못하는 매창을 그리워하면서 여러 편의 시를 지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인은 지금 바느질을 하고 있다. 봄날임에도 날씨가 추워 겨울옷을 꿰매는 시간에 창문으로 햇살이 새 들어 온다. 옷이야 어떠하든 손길 가는 대로 맡기니 구슬 같은 눈물이 바늘과 실을 적신다고 했다. 여자의 깊은 심회를 읊고 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라는 시조는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글을 지은 주인공이 조선시대 기생이었던 매창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만종은 저서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송도의 진랑(眞娘'황진이)과 부안의 계생(桂生'매창)은 그 사조(詞藻)가 문사들과 비교하여 서로 견줄 만하니 참으로 기이하다"며 매창을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명기(名妓)로 평가했다.
매창은 가사(歌詞)'한시(漢詩)'시조(時調)'가무(歌舞)'현금(玄琴)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여류 예술인이었다.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유가 깊었다. 매창이 38세의 아까운 나이로 죽었을 때 유희경은 '이원(梨園)에 한 곡조 남겨놓고 갔구나'(只有梨園餘一曲) 하여 그도 '이화'로 조상했다. 허균은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였다'(淸歌解駐雲)는 시를 읊어 통곡했다고 한다.
매창의 작품으로는 가사와 한시 등 70여 수 외에도 금석문(金石文)까지 전해지고 있다. 1668년(현종 9년)에 구전돼 오던 작자의 시 58수를 모아 부안의 개암사에서 간행한 '매창집'(梅窓集)이 있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묘는 전라북도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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