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고양이 치주염

자세를 낮추며 '체셔야' '앨리샤' 하고 부르면 녀석들은 늘 가까이 다가와 내 코에 촉촉한 자신의 코를 맞대곤 한다. 서로 코를 맞대는 것이 고양이 세계에서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나름대로 마오리족이 서로 마주치면 코로 인사하듯 반가움의 표시, 친근감을 표시하는 고양이들의 인사법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기 위해 고양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하면 늘 포근한 냄새가 난다. 코를 맞대면 고양이들이 먹는 사료 냄새가 나지만 이때 나는 냄새는 단순한 사료 냄새와는 조금 다르다. 고양이들이 대개 무취라지만 내게 느껴지는 고양이 특유의 내음과 어우러져 왠지 마음이 푹 놓인다.

물론 항상 담백(?)하고 친숙한 사료 냄새만 나는 것은 아니다. 습식 캔을 먹고 난 뒤 고양이들의 입 냄새는 나 몰래 냉장고를 뒤져 생고등어를 훔쳐 먹은 것처럼 비리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 냄새를 여기저기 뽐내고 싶은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갓 통조림을 먹은 혀와 앞발을 이용해 이리저리 온 얼굴을 세수해 대고 결국 온 얼굴에서 풀풀 통조림 비린내를 풍기곤 한다. 이런 냄새 나는 얼굴을 내게 들이밀 때면 장난스레 '어휴 너 냄새 나!' 하면서 녀석들의 얼굴을 슬쩍 밀어버린다.

하지만 비린 냄새보다 훨씬 고약한, 정말 곤란한 냄새가 난 적이 있었다. 그 주범은 바로 '치주염'이었다. 처음 체셔를 데려올 당시엔 고양이를 양치질시킨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따라서 칫솔질을 시켜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고양이들의 구강 건강을 위해 입이나 마시는 물에 뿌려준다는 스프레이만 구입해 사용했다. 그마저도 입에 직접 뿌려주면 몹시 싫어했기에 마시는 물에만 넣어주곤 했다. 몇 년이 지나면서 그것도 잊게 되었고 가끔 간식 삼아 주는 이빨 과자 말고는 치아 관리를 전혀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체셔에게서 여느 때의 사료 냄새가 아닌 묘한 악취가 나는 것을 느꼈다. 뭔가 문제가 있나 싶었지만 그냥 넘겼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무심코 넘겼던 그 냄새는 점점 심해졌고 예전에 쓰던 구강 스프레이를 다시 구입해 써 봤지만 그다지 해결되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왠지 체셔도 이가 아프다고 느끼는 듯 먹는 것이 예전 같지가 않았다. 병원에 가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지인이 키우던 고양이가 스케일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려동물들도 '스케일링'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생각조차 못했던 방법이었다.

체셔는 스케일링을 했고 치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더 이상 구취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스케일링할 당시 체셔의 잇몸은 치주염으로 빨갛게 부어 있었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치아 두 개도 함께 제거해야 했다. 그간 체셔도 많이 아팠던지 스케일링 후 약을 먹는 내내 얌전히 약을 받아먹었다.

고양이는 사람과 달리 치아 앞쪽만 닦아줘도 효과 있다고 한다. 너무 늦기 전에 체셔의 치주염을 발견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내내 방치했던 것을 생각하면 미련한 집사의 행동이 후회되고 미안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 두 녀석 모두 치아 특별관리 대상이다. 이제 나이가 있기에 계속 신경 써 줘야 하는 체셔뿐만이 아니라 앨리샤 역시 선천적으로 치주염이 있어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칫솔질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집 고양이들이기에 내가 관리랍시고 손으로 먹는 치약을 발라주기만 하는 게 전부지만 익숙해지면 어릴 때부터 칫솔질을 즐겨한다는 다른 집 고양이처럼 칫솔질을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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