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아내와 둘만의 캠핑

장작불 피워놓고 인스턴트 커피 마시며 연애 시절 추억

'16년 만의 아내와 캠핑'.

무엇이 그렇게 바쁘게만 만들었을까? 연애 시절, 우리 부부는 곧잘 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달라졌다. 항상 바빴으며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캠핑도 그랬다. 자녀를 둔 대부분의 부부 캠퍼는 이런 캠핑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던 우리 부부에게도 이젠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우리의 울타리를 벗어나고파 하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자란 이후 조금은 평소보다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지난 주말 평소 바쁜 업무로 인해 늘 피곤해 하는 아내와 단둘이 캠핑을 떠나자는 제안을 했고 아내는 밝은 표정으로 답해줬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롭고 즐거운 단풍구경 캠핑을 떠났다. 16년 만에 떠나보는 둘만의 외출이었다. 둘이 떠나는 캠핑이라 많은 장비도 필요 없었고 오토캠핑장을 찾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예약할 필요도 없었다. 또 서두를 필요도 없어 준비하는 내내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모처럼 둘만의 여행에서 혹시나 아내가 불편해할까 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장비들을 챙겼다.

대구를 벗어나 청송 주산지를 향해 가는 국도변은 붉게 물든 단풍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아내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여고생 마냥 연신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동안 왜 이런 여행을 생각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했을까? 괜스레 미안함이 밀려왔다. 금전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맘이 없어 이런 여행을 함께하지 못한 생각이 들어 자꾸만 미안해졌다.

그렇게 찾아간 주산지는 단풍 관광을 나선 관광객들의 차량으로 심한 정체를 빚었지만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여유가 있었다. 아마 그것은 16년 만에 함께 외출을 나온 아내의 미소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아내의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었다. 어린아이 마냥 연신 쫑알거리는 아내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모처럼 둘만의 사진도 찍었다. 사진 속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 생각에 잠시 어색함도 느꼈지만 그날은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주산지의 가을은 가끔 보던 사진 속 풍경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지금 그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 우리 부부가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했다.

주산지 인근 청운교 아래서 캠핑하기로 했다. 평소와는 달리 둘만의 작은 공간을 꾸몄다. 혹시 아내가 추울까 두꺼운 옷도 꺼내주고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가스난로도 켰다. 아내와 대화 시간을 더 많이 갖기 위해 반찬도 집에서 대부분 챙겨왔다. 따뜻한 홍합탕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연인 시절 내가 해주던 된장찌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내. 하지만 나는 16년 가까이 아내의 된장찌개만 먹고 있었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밤늦도록 연애 시절을 떠올리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아내에게 무심했음을 반성했다. 가족이 되기 전 연인이었을 때는 하나였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 우리는 각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이제 다시 하나가 되도록 아내에게 관심을 갖기로 했다.

늦은 가을밤 텐트에서 아내와 마주 앉으니 행복했다. 이제껏 바쁘다는 핑계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많이 했다. 아내도 많이 즐거워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동안 이렇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비싼 커피숍의 커피보다 차디찬 알루미늄 팩에 담긴 일회용 커피가 그날따라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옆에 아내가 있기 때문이니라. 종종 이런 캠핑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 부부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음 캠핑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향하는 눈빛과 말투는 떠날 때와 달라진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원곤(네이버 카페 '대출대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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