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7시 대구 남구 대명동 한울림소극장에서 열린 공연은 '특별'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약 60분간 진행된 무대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연에 몰입했고 배우들의 연기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 관객은 "너무 감동적인 무대였다. 대사 한 마디 없는데도 감동이 몰려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모두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농아인(수화를 소통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이다.
국내 최초로 농아인 배우들로 구성된 연극단 '부에나 비스타'가 이날 창단 첫 공연으로 신체극 '지하철이야기'를 한울림소극장 무대에 올려 감동을 줬다.
◆기쁨의 눈물
부에나 비스타는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 대구광역시협회가 대구시립극단 출신 배우 이재선 씨와 함께 만든 농아인 배우들로 구성된 극단이다.
하승미 한국농아인협회대구광역시협회 사무국장은 "농아인들이 갖고 있던 연극에 대한 열망을 해결해 보고자 팬터마임이나 자막 연극, 수화 동시통역 연극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다 이재선 씨를 만나 '신체극'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단을 구성한다는 소식에 많은 농아인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창단 멤버 7명이 모였다. 하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연기를 가르치고 무대에서 어떻게 연기의 화합을 맞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연출을 맡은 이재선 씨는 "배우들이 듣지 못한다는 제약 때문에 장면 전환이나 등'퇴장 때의 신호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대 조명을 이용해 조명이 바뀌는 시점을 신호로 삼아 연기의 하모니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객석에 스태프가 앉아 손으로 박자를 세고 그에 맞게 동작을 지시하면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이를 눈치껏 보고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배우 김주연(32'여) 씨는 "가족들에게 '연극에 도전하겠다'고 하자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연극을 한다는 말이냐'라며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하지만 공연을 본 가족들이 내 연기를 보고 '잘했다, 고생 많았다'고 칭찬하자 너무 기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자신감 생겨
이들이 연기에 도전해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배우 김정중(37) 씨는 "연극에 대해 잘 몰랐고 자신이 없었지만 혼자가 아닌 여럿의 힘으로 공연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빗방울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 농아인들이 모여 도전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했다. 배우 구가영(22'여) 씨는 "고등학교 때 연극에 도전했다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벽이 돼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도전으로 연극 도전의 꿈을 이뤘다"고 했다.
연출을 맡은 이재선 씨는 "신체극은 대사가 없는 대신 몸으로 감정과 이야기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몸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농아인들이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조금만 더 훈련이 된다면 부에나 비스타와 함께 좀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첫 공연을 무대에 올린 부에나 비스타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속 배우들이 전업 배우가 아니라 각자 직장과 학교에 다니고 있는 생활인인 데다 극단을 위한 연습공간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하승미 사무국장은 "부에나 비스타 극단을 계속 운영하려면 투자자를 찾는 것이 가장 큰일"이라며 "이들이 연극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농아인협회의 숙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농아인협회는 한국장애인재단에 사업자금 지원을 신청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으로의 변신도 계획 중이다. 부에나 비스타 단원들은 "이번 대구 공연이 신호탄이 돼서 앞으로는 전국 순회공연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는 극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공연은 16일 오후 3시와 7시에도 대구 남구 대명동 한울림소극장에서 열린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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